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역내 산업 보호를 명분 삼아 철강 수입 장벽을 대폭 높이겠다고 예고했다. 수입산 철강에 대한 무관세 혜택이 대폭 줄고 관세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50%로 인상돼 한국산 철강에도 직격탄이 예상된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8일 유럽 철강업계 보호 대책을 담은 규정안을 발표했다. 우선 모든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연간 무관세 할당량(수입쿼터)이 최대 1830만톤으로 제한된다. 지난해 수입쿼터(3053만톤) 대비로는 약 47% 줄어드는 것이다. 총량의 감축으로 한국을 포함한 국가별 수입쿼터도 대폭 삭감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수입쿼터 초과 물량에 부과되는 관세율도 기존 25%에서 50%로 인상된다.
이번 조치는 기존 세이프가드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세이프가드란 2018년부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철강 관세에 대응해 국가별로 지정된 쿼터 수준까지는 무관세로 수입하되,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내년 6월말부로 세이프가드를 강제 종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이번 조치는 유럽경제지역(EEA) 국가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한 모든 제3국에 적용되며, 국가별 수입쿼터는 추후 무역 상대들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결국 한국산 철강도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EU는 한국산 철강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대(對)EU 철강 수출액은 44억8000만 달러(약 6조 2836억원)로, 단일국가 기준 1위 수출시장인 미국(43억4700만 달러)보다 더 많았다.
모든 품목에 50%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과 달리 EU는 쿼터제도가 있다는 점에서 일부 차이는 있으나, 수입쿼터가 대폭 줄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4월 세이프가드 물량 축소로 한국산 쿼터가 최대 14% 줄어든 상태이기도 하다.
시행 시기는 아직 유동적이다. 규정안이 발효되려면 유럽의회,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간 협상 등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