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영희(57·가명)씨는 배우자가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다가 재작년에 사망해 혼자가 됐다. 배우자의 치료비로 상당한 빚을 지게 됐고 해오던 아르바이트는 경기 불황으로 쉬고 있다. 마시지 않던 술을 한두 잔 마시게 되는 날에는 문득 ‘삶을 끝내면 얼마나 편안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아가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 정신과에 방문해야 할지 고민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은 점차 커지지만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 이용률은 12% 수준에 그쳐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조기 치료를 미뤄 질병을 키우거나, 아예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7일 보건복지부의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성인 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 등을 느낀 사람의 비율은 11.3%를 기록했다. 10명 중 1명 이상은 1년간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다.
또한 평생 동안 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 장애, 우울 장애, 불안 장애 중 어느 하나에라도 이환된 적이 있는 정신장애 평생유병률의 비율은 27.8%로 나타났다. 특히 인구 10만 명 중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인구수는 10만명당 27.3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가별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서비스 이용률은 12.1%에 그쳐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처럼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이 저조한 배경에는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배제 경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이상동기 범죄들이 발생하고, 일부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잠재적 범죄자’란 편견이 확산됐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정신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에 따르면 올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인지적 측면)는 2022년 대비 높아졌으나, 정신질환 수용도와 부정적 인식(정서적 측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라고 답변한 응답 수치는 2022년(3.19)에서 올해 3.36으로 0.17포인트 높아졌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취업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라는 답변도 2022년 3.61에서 올해 3.73으로 0.12포인트 뛰었다.
이러한 편견으로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비율은 줄어들었다. 평소 정신건강 유지를 위한 노력 비율은 2021년 82.0%에서 2022년 78.8%, 올해 78.8%로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비율은 감소했다. 적극적인 노력의 비율은 2021년 12.6%를 기록한 이후 2022년 14.5%, 올해 11.1%로 하락했다.
최근 1년간 정신건강 문제 경험은 2022년 63.9%에서 올해 73.6%로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났다. 기타 중독 문제(+12.0%포인트), 심각한 스트레스(+10.3%포인트),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10.2%포인트) 증가가 가장 두드러졌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은 경우 치료 시작까지 약 1년2개월이나 정신건강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정신건강에 소홀히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문제 인식 후 즉시 치료한 환자는 전체의 42.2%, 1년 이상 방치한 환자는 22.0%에 달했다. 치료 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27.2%) ▲상담(치료)비용 부담감(21.1%) ▲상담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14%) 등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일반인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상 동기 범죄와 정신질환을 결부시키는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어 적절하지 않다”며 “정신건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정신질환 조기 치료의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