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예산안이 673조3000억원으로 확정됐다.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안에서 증액 없이 총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야당 단독 수정안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거쳐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4조1000억원 규모의 감액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재석의원 278명 중 찬성 183표, 반대 94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어 그대로 확정된다.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이유로 지목하기도 했을 만큼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이어왔다. 당초 민주당은 4조1000억원에 이어 7000억원 규모의 추가 예산 삭감을 예고했으나, 비상계엄 등 사태로 인해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추가 감액하지는 않았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예비비 2조 4000억원 ▲국고채 이자 상황 506억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수활동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정업무경비 506억9100만원 ▲검찰 특활비 80억900만원 ▲감사원 특경비 45억원 ▲감사원 특활비 15억원 ▲경찰 특활비 15억원 ▲용산공원 예산 229억원 등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알려진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예산은 505억원에서 497억원 삭감된 8억원으로 줄었고, 전공의 지원사업은 3678억원에서 2747억원으로,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ODA 사업은 94억원에서 50억원으로, KTV 운영 비용은 293억원에서 219억원으로 각각 감액됐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가 핵심인 소득세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5000만원이 넘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소득에 매기는 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일을 2025년 1월 1일에서 2027년 1월 1일로 2년 유예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의 출산지원금 근로소득 비과세, 자녀세액공제 금액(1인당 10만원)확대 등도 통과됐다.
앞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전날 밤에 이어 이날 오전 우원식 국회의장 주선으로 최상목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막판 협상을 이어갔다. 정부는 2조1000억원 증액 수정안을, 여당은 3조4000억원 증액안을 제시했지만 절충안을 찾지 못했다.
민주당에 따르면 기재부와 국민의힘은 예결위가 의결한 감액 예산 4조1000억원 중 ▲예비비 1조8000억원 ▲국고채 이자상환 비용 3000억원 등 총 2조1000억원을 복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신 ▲지역화폐 예산 4000억원 ▲고교무상교육 국고지원예산 3000억원 ▲AI·재생에너지 지원 예산 2000억원 등 민주당의 정책 예산을 9000억원 증액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민주당은 감액된 예산을 복원하려면 그 복원 규모에 맞게 민생 예산도 증액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지역화폐 예산 1조원 확대, 대왕고래 예산 전액 삭감, 고교무상교육 국비지원 유지를 고수했고, 기재부와 여당이 최종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서 최종 결렬됐다.
민주당은 “내란 사태로 인해서 우리 경제 위기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추가 감액하지 않고 예결위에서 처리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지역화폐 예산이 너무 과다해 정부가 그 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며 “정부는 지난해 지역화폐 예산 3000억원에 1000억원을 증액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민주당은 지역화폐 1조원에서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감액 심사 내용만 반영된데다, 야당의 단독 처리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각에선 국내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
새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가능성도 대두됐다. 조기 대선 비용과 이번에 반영되지 않은 추가 민생·경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추경 편성 논의가 새해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