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고조의 여파로 9일 국제유가가 약 3년 8개월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 경제에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위협하며 금융위기 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경기 성장이 둔화하는데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필요시 100조원 규모로 마련된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확대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중동 상황과 관련해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어 유가와 환율 등 경제·물가 상황을 점검하고 범부처 대응책을 논의했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기후에너지부, 산업통상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 장관들이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중동 지역 위기 심화로 글로벌 무역과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향후 전개 양상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100조원 규모로 마련돼 있는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정부와 중앙은행 차원의 추가 조치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석유 제품을 비롯한 물가 관리를 위한 당부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수급과 가계 불안 상황이 엄중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비상한 대책도 필요하다”며 “전략적 협력 국가들과 공조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을 신속하게 발굴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에 대해선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부담이 서민에게 가장 먼저, 또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 부당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하고 특히 이번 상황을 계기로 우리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개혁 과제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 매점매석, 사재기 등 불법 행위는 철저하게 단속하고 위반할 경우 그로 인해 생길 이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 엄정한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며 “객관적 상황은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것이고, 결국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비·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다음이 결정된다. 전방위적 대비 수단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마련해달라”고 독려했다.
아울러 “위기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서민에게 더 큰 어려움을 준다”며 “국민이 겪는 일시적인 고통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오전 7시 26분 기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7.54 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유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소비자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공산품 등 전 분야에는 2∼3개월 시차를 두고 영향이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6원 오른 1493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장중 1490원대에 머물며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 12일(고가 1500원) 이후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당초 1480원대에서 환율이 오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되며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