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에 대한 이란의 반격에 따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불과 열흘 새 국내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이 10% 넘게 치솟은 데 따른 조처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중동 상황과 관련해 비상경제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에 대해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임시 국무회의에서도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같은 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춘추관에서 열린 중동 상황 등 비상경제점검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산업통상부에서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이번 주 내로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고시제정 등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는 석유제품의 비정상적 가격 결정을 방지하고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가격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통상부는 문신학 차관 직속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체적인 제도를 설계 중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고, 시행하게 되면 바로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시행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산업부의 입장이다.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해당 조항은 석유의 수입ㆍ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산업부장관이 석유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석유 최고가격 지정 시행 시 국내 유가의 단기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윳값은 ℓ당 1903.88원으로 1900원선을 뚫었고, 경윳값은 1927.74원에 달한다. 휘발유과 경유 가격은 지난 1일 1600원대 후반에 불과했지만 중동 사태의 장기화 우려로 약 1주 새 200원 넘게 뛰었다.
반면 정유사가 손실을 피하고자 국내 공급을 줄이고 수출로 물량을 돌리는 공급 왜곡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도 취지와 달리 국내 공급가를 오히려 올리고 국내 정유업계의 경쟁력까지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장기간 고공행진할 경우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석유사업법 제23조 3항은 정부는 필요 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 지정으로 인해 석유정제업자ㆍ석유수출입업자 또는 석유판매업자가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현 시점에서 정부가 유류세 인하 확대나 비축유 방출 등 대책을 시행하기 전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