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의 여러 가스시설이 폭격을 당하고 이에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19일 이스라엘이 이란 최대가스전에 폭격을 가하고, 이란이 주변국 에너지 시설에 반격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의 5월 인도분 선물 종가는 이날 배럴당 107.38달러로 전장 대비 3.8% 올랐다. 4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96.32달러로 전장 대비 0.1% 상승했다. 브렌트유는 종가 산출 이후 배럴당 111달러를 찍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와 직결된 이란 남서부 해안 아살루에의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를 폭격했다. 이에 대한 보복 대응으로 이란혁명수비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겠다며 즉시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란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20%를 담당하는 카타르의 가스 시설 밀집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 같은 석유·가스 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은 전 세계 원유 해상 공급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 차질 문제를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브렌트유 가격이 올 2분기와 3분기에 평균 130달러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국내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 유가 상승의 충격이 가장 직접적인 곳은 아무래도 정유·석화업계와 항공·해운업계다. 특히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를 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커지자 대체 수입선 확보에 나서는 한편 설비 가동률 하향도 검토 중이다.
유류비 비중이 영업비용의 최대 35%를 차지하는 항공업계의 수익성 악화도 가시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3050만 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 시 3050만 달러(457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유가가 현재와 같이 이전 대비 50달러 오르면 연간 2조2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1155만 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 시 1155만달 러(173억원) 안팎의 손해를 본다.
해운업계는 운임 상승으로 수혜를 보고 있지만 선박 연료인 초저유황유(VLSFO) 가격 급등으로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항 기준 VLSFO 가격은 지난달 27일 톤당 522 달러(약 78만원)에서 전날 1005 달러(약 150만원)로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중동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던 국내 전자업계도 한숨이다. 중동으로 향하는 수출 선박들에는 컨테이너당 평균 수백만원 수준의 전쟁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만개 규모 대형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하면 컨테이너선 한 척에 전쟁 할증료만 200억원 넘게 추가되는 것이다.
철강의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석탄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철강업계, 선박용 강재 절단에 쓰이는 특수 가스 ‘에틸렌’ 수급이 중요한 조선업계도 전전긍긍이다. 건설·건자재 업계는 비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유가·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철강, 시멘트 등 건설 자재 생산비와 장비 운용비, 운송비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업계 역시 원료의약품 수입 비용, 임상, 물류비 등이 증가하고 글로벌 투자 위축 가능성도 커지면서 고심이 깊다. 호르무즈 해협 등 글로벌 물류 흐름이 막혀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이 예상되는 가운데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업계 부담이 증폭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국내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원자재 수급, 생산, 판매까지 모든 공급망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는 현재 중동 시장 점유율이 10%에 달하는데 이에 대한 생산 및 판매 전략도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
중동에 생산기지를 둔 전자업체들도 경영 불확실성에 공장 가동률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집트에서 TV 및 휴대전화를 생산 중이고, 튀르키예에서 휴대전화 공장을 운영 중이다. LG전자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전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한국의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할 것이라는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도 이날 발행됐다. 석탄·석유 생산비가 80% 넘게 폭등하고, 이에 따라 전력·가스 생산비도 77%까지 오르는 등 산업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부문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