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에 대한 삼성 오너 일가의 상속세 납부가 5년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3일 재계에 따르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유족들은 지난 4월 마지막 상속세를 전액 납부했다. 유족들은 지난 2021년 연부연납을 신청한 이후 5년에 걸쳐 총 6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해왔다.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주요 관계사 지분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유산에 부과된 총 상속세는 12조원 규모에 달한다.
개인별 상속세액은 홍라희 명예관장이 3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재용 회장 2조9000억원, 이부진 사장 2조6000억원, 이서현 사장 2조4000억원 순으로 파악됐다.
이재용 회장은 경영권 및 지배구조 안정을 위해 주요 계열사의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 등을 활용해 상속세를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홍 명예관장을 비롯한 세 모녀는 보유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왔다.
이번에 완납된 12조원의 상속세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다. 이는 2024년 기준 국가 전체 상속세수(8조2000억원)의 약 1.5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글로벌 상속세 납부 사례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상속세 완납을 두고 사회 지도층의 책무를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족들은 2021년 4월 상속세 신고 당시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며 법과 원칙에 따른 성실 납부를 약속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치열한 경영활동으로 삼성을 일궈 국가 경제에 기여한 이건희 선대회장이 세금과 대규모 기부를 통해 마지막까지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을 실천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삼성 오너 일가는 선대회장의 유산 약 26조원 중 15조원을 세금 납부와 사회 기증·기부의 형태로 환원했다. 평소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21년 4월 유족들은 국립중앙의료원에 7000억원을 출연했다. 이 중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 병원인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에 쓰이며 나머지 2000억원은 감염병 연구 인프라 확충과 연구 지원에 투입된다.
아울러 소아암과 희귀질환을 앓는 어린이들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3000억원을 기부했다. 생전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어린이집 건립에 나섰을 만큼 어린이를 위한 보육과 복지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고인의 뜻을 기린 것이다.
이 기부금 중 1500억 원은 소아암 진단·치료에, 600억원은 희귀질환 진단·치료에 쓰이고 있으며 900억 원은 공동임상연구 및 연구 인프라 구축에 활용 중이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명예관장은 지난해 10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행사에 직접 참석해 환아와 의료진을 격려하기도 했다.
삼성이 사회에 환원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은 국내를 넘어 해외 순회전으로 이어지며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21년 4월 유족들은 고인이 평생 수집한 소장품 중 2만 3000여 점의 미술품을 사회에 무상 기증했다. 당초 일각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소장품을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유족들은 전량 기증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기증된 미술품 중 국보 40점과 보물 127점을 포함한 고미술품 2만1693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거장들의 근현대 미술작품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각각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개최한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은 총 35회에 걸쳐 누적 관람객 350만명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의 열기는 전 세계 주요 미술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첫 해외 순회전이 막을 올린 데 이어 현재는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에는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세 번째 해외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에 걸쳐 구축한 방대한 컬렉션은 한국 문화·예술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국가적 자산이 되었다”고 전했다.
노희선 온라인 기자 ahrfus3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