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 결정을 놓고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싸움에 눈치를 보고 있다.
KDDX 사업은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의 실전 배치가 목표다.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해당 사업에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했다.
결격 사유가 없으면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는 게 관례다. 방위사업관리규정의 함정사업 절차에 따르면 기본설계 주관기관이 계속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 또는 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본설계 참여업체로 하여금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계속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관례대로 수의계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주장한다. 상위법은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고, 방위사업관리규정도 예외적 규정일 뿐이라 수의계약을 체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한화오션이 만든 KDDX 개념설계 등을 탈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군사기밀 탐지·수집, 누설로 인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1월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모두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을 선고받았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군사기밀 탈취 사건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고 상호 비방 수위를 높이는 등 극한의 대립 중이다.
난감해진 방사청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나온 수의계약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와 경쟁입찰로 정해졌다는 보도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경찰은 현재 KDDX 사업 기밀 유출 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는 지난달 말 울산지검에 수사관을 보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사건 자료를 확보했다.
방사청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한 쪽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두 업체의 갈등이 장기화되면 사업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적지 않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