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부터 탄소배출권 시장이 확대된다. 자산운용사, 은행·보험사, 기금관리자 등도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금융사 중에선 증권사가 탄소배출권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지만, 해외에선 분야를 가르지 않고 다수의 금융사들이 탄소배출권 거래를 성장동력으로 삼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5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공포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권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마치고 규제·법제 심사 절차에 착수했다.
내년 2월 시행되는 배출권거래법 개정안에 의하면 배출권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시장참여자의 범위는 기존 할당 대상 업체, 시장 조성자 및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에서 자산운용사, 은행 및 보험사, 기금관리자 등으로 넓어진다. 환경부는 시장 참여자가 늘어나면 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돼 배출권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국의 배출권 거래 규모는 유럽연합(EU) 배출권 시장의 30분의 1 수준”이라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장 참가자가 150여 곳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출권의 높은 가격변동성은 낮은 배출권 가격과 함께 기업의 탄소저감장치 투자를 저해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며 “시장 참여자의 확대는 폐쇄적인 배출권 거래제의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게 하는 요인으로, 중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직접 참여 허용도 검토될 예정이며 시장 참여자의 편리성 증대를 위해 위탁매매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가 금리 차별화, 포트폴리오 조정 등 금융 자원의 배분을 통해 시중자금이 고탄소 산업에서 저탄소 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등 탄소중립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은행들은 탄소중립 목표를 공시하고 금융배출량 관리에 나섰다. 올해 4월 말 기준 20개 국내은행 중 13개사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중 11개사가 2030년까지의 금융배출량을 2019~2022년 대비 최대 48%까지 감축하겠다는 중간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금융배출량 측정 방법 등이 아직 개발 단계에 있고 은행별 평가자산의 포괄 범위가 달라 현재 공시된 정보만으로 은행 간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내년부터 시장 참여자가 확대되는 만큼 글로벌 금융사의 사례를 참고해 향후 탄소배출권 비즈니스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백종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사는 탄소배출권 관련 파생상품 거래, 탄소배출권 감축사업 관련 직·간접 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참여해 상품 및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글로벌 탄소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면서 금융사들이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탄소배출권 생태계에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유로존 최대 은행인 프랑스의 BNP 파리바는 그룹 내 계열사 간 협업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기반 배출권 창출 업무를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권을 신규로 확보하고 장외 시장에서 이를 중개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배출권 창출에 강점이 있다.
영국 대형은행인 HSBC는 기후변화 전문자문사와 합작투자사를 설립해 탄소 감축 프로젝트 등에 투자하고 있다. 호주 투자은행 맥쿼리는 탄소 크레딧 관련 전문자문사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 중이다.
백 연구원은 “금융업권은 탄소배출권 관련 국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해 상품 및 서비스 개발은 물론, 틈새 시장 발굴, 특화 솔루션 개발 등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