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뒤 ‘트럼프 쇼크’로 ‘탈(脫) 국장(국내 증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 대신 미국 증시로 몰리는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세계 증시 호황에서 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해 미국 다우존스30평균 16.51%·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25.45%·나스닥 28.45%, 일본 니케이225 16.55%, 중국상해종합 15.03%, 홍콩항셍H 23.55% 등 주요 국가들이 모두 크게 올랐다. 하지만 코스피는 -6.50%, 코스닥은 -18.01%로 소외됐다. 실망감은 자금 이동으로 표출됐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올해 초 59조5000억원에서 이달 49조9000억원으로 10조원이나 줄었다.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 미국주식 보관금은 지난 13일 기준 1017억4694만 달러(약 142조5718억원)로 미국 주식 보관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 금액이다.
앞서 지난 1월 649억 달러 수준이었던 미국 주식 보관액은 2월부터 720억 달러로 급증,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85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9월에 910억 달러를 돌파했고, 이달 7일에는 1013억6570만 달러로 사상 첫 1000억달러(약 141조)를 돌파했다.
2018년만 해도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98억3390만 달러(약 13조5600억원)에 그쳤다. 2019년 144억5305만 달러(약 19조9293억원)로 늘더니 2020년 470억7665만 달러(약 64조9140억 원)로 1년 사이 225.7%나 급증했다. 2021년에는 779억1344만 달러(약 107조4348억원)로 100조원도 넘겼다.
이후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에는 553억6605만 달러(약 76조3442억원)로 주춤했지만, 지난해 다시 768억5011만 달러(약 105조9840억원)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주도주가 있는 미국 시장으로 자금이 쏠렸다.
오랜 기간 박스권에 갇힌 한국 증시는 특히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후 낙폭이 두드러졌다.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15일 기준 1973조원으로 2000조원을 밑돌며 1년 전(1984조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외국인 자금 이탈도 가속화되면서 코스피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주식 비중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15일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코스피 주식 시가총액은 637조4877억원으로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1973조5천130억원)의 32.30%를 차지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초 32.7% 수준이던 외국인 시총 비중은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 7월 36%대까지 늘었으나 점차 감소해 8월 34%대, 9월 33%대, 10월 말 32%대로 내려앉은 뒤 지속해서 줄고 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8770억원 순매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라 수출 중심의 한국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데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돌파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보조금 철폐 정책이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한국의 주력산업에 미칠 악영향 우려로 당분간 국내 증시에는 트럼프발 쇼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국내 투자자달의 미국 주식 쏠림 현상도 당분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시장은 트럼프 당선인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관련해 긍정적 기대감만 결집하고 한국은 부정적 전망만 집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경제 부처 수장들을 인선하고 이들을 통해 주요 정책이 정제된 형태로 발표되기 전까지는 이런 변동적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