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떴는데 돈도 없고 ‘선장’도 사라진 격이다. 동해의 깊은 바다에 있다는 ‘대왕고래’를 찾으러 떠날 수 있을까.
동해 유망구조의 석유·가스 매장 여부를 확인할 탐사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가 9일 오전 6시 부산외항에 입항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프로젝트가 첫 발을 떼는 상징적인 순간이지만 관계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식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고 있다. 동남아 해역에 머물던 이 시추선이 부산을 향해 출발한 지난달과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선장은 윤 대통령이었다. 지난 6월 긴급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직접 개발 의지를 피력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 가능성을 발표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그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 총액의 5배 정도”라고 강조했다. 가스전 중 가장 유망한 곳에 붙인 ‘대왕고래’라는 명칭이 정부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최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지위를 잃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정치 2선으로 밀렸다. 게다가 야당에서 매주 탄핵안을 올리겠다고 예고한 터라 언제 또 상황이 변할지 모른다.
아울러 관련 예산도 증발했다. 산업부가 신청한 약 500억원이 지난달 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서 전액 삭감됐다. 당초 해당 예산에 석유공사의 자본을 더해 1차 시추 작업에 드는 약 1000억원 비용을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예산 전액 삭감으로 사업비가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산항에 도착한 웨스트 카펠라호의 시계(視界)는 목적지인 동해 심해보다 깜깜하다. 당초 계획은 7~8일간 시추에 필요한 자재를 싣고 오는 17일쯤 시추 해역으로 떠나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산업부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탄핵 정국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1차 시추는 진행 하더라도 앞으로가 문제다. 정부는 심해 가스전 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약 20%인 것을 감안, 향후 5년간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에 1차 시추는 석유공사 단독으로 수행하고, 2차 시추 단계부터 해외 오일 메이저 등의 투자를 받아 공동 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었으나 1차 시추부터 미지수에 빠져 미래가 어둡다.
결국 1차 시추가 계획대로 이달 중순 시작되고 향후 약 2개월간의 작업 기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야만 그 이후를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정부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지만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오르기 전까지 국회를 대상으로 첫 시추 예산의 필요성을 설득할 방침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