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여파가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우리 경제에 켜진 빨간불이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원∙달러 환율부터 국내 주가 등 주요 경제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비서구 사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평화적으로 안착시킨 선진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K-한류를 통해 전 세계에서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하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려 했다는 사건 자체가 국가 이미지를 한없이 추락시켰다. 더 문제인 것은 이후 벌어진 정국 수습 상황이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투표가 무산되면서 일주일 동안 정국 혼란이 이어졌다. 환율이 요동치고 주가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12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다소 안정되는 듯하더니 여전히 여야갈등 심화에 탄핵심판 일정도 확정되지 못하면서 한국 경제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바로 나라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 인구 고령화다. 2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5122만1286명)의 20%를 처음으로 돌파했다. 유엔(UN)이 제시한 초고령 사회 기준에 딱 들어맞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이며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다. 무엇보다 내년 중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존 예상보다 더 빨리 노인 인구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보다 노령 인구 비중이 늘어나면 내수 경제가 침체할 수밖에 없다. 내수 경제를 활발하게 돌아가게 하는 10∼50대 경제 활동 인구 비중이 줄어들고 이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비 활동이 적은 고령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K-한류로 해외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내수 경제를 떠받쳤건만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인지 기업들도 늙어간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조차 점점 20대 직원 수는 줄어들고 40대 이상 직원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CXO연구소가 지난 9월 발표한 ‘2010~2023년 삼성전자 고용인력 변동 입체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 29세 이하 직원 수는 지난해 기준 7만2525명으로 전체 비중은 27.1%로 나타난 반면 40대 이상 직원은 8만1461명으로 비중은 30.4%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처음으로 40대 이상 직원 수가 20대 직원 수를 넘어선 것이다. 굵직굵직한 대기업조차 이럴진대 젊은 인재가 절실한 혁신 기업 탄생을 기대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이처럼 대한민국호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 현안이 시급한 상황에서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국회가 침착하게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온 국민이 일어나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았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게 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건강한 시민의식과 국회 등 정치제도의 정상 작동에 호응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피치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여전히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 S&P 측은 “최근 사태에도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의 급한 불은 당장 껐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기존 자유무역 질서마저 급변할 상황에 처했다. 더 이상의 정쟁보다 차분하면서도 안정적인 정국 수습이 이뤄져야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진정 민심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선진적인 대한민국의 정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