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경제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국내 경기 부진과 트럼프 2기 내각 출범 등 대내외 불안 요소가 곳곳에 상존하면서 불확실성이 다시 증폭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40원 선을 위협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17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탄핵 가결 후 한국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등에 대해 짚어본다.
“550 솔드(sold·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겠다는 주문)!”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 경제의 불안 요소로 지목되는 환율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환율 전쟁’의 최전방이라고 불리는 ‘하나은행 딜링룸(Dealing Room·딜러들이 모여 거래가 이뤄지는 공간)’을 찾았다. 이날 방문한 딜링룸은 총성 없는 전투장이었다. 6개의 모니터 앞에 앉은 딜러들은 실시간 바뀌는 외환 시장 추이를 파악하고 바쁘게 외환을 사고팔기 위해 정신없었다. 이 과정에서 딜러들은 “솔드”라고 수차례 매도 주문을 외쳤다. 곧바로 계약이 체결된 경우 “던(done)”이라고 소리쳤다. 며칠 동안 원·달러 환율이 횡보세를 나타내면서 수출기업의 매물이 몰리면서 매도·매수 주문 소리가 딜링룸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 딜러는 전화를 받는 와중에도 초 단위로 움직이는 외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화면에 눈을 떼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대화도 사치였다.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외환거래 주문과 체결을 알렸다.
외환 교환 비율은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 매도측과 매수측의 가격이 맞으면 결정된다.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원·달러 환율은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엔 떨어진다. 한순간의 판단으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손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딜링룸은 언제나 초긴장 상태다.
딜링룸 전면에는 증시 및 환율 정보가 담긴 현황판이 있고, 국내 및 국제 뉴스 채널이 실시간으로 나왔다. 딜링룸에선 계엄 사태 직후의 혼란스러움은 어느정도 누그러졌지만 딜러들은 여전히 긴장 속에서 각자의 업무에 열중했다. 지난 3월 개관한 하나은행 딜링룸 ‘하나 인피니티 서울(Hana Infinity Seoul)’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 4~5층에 위치한다. 도전과 혁신의 ‘뉴(New) 하나 딜링룸 2.0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문을 연 이 공간은 총 2096㎡(약 634평), 126석의 국내 최대 규모의 딜링룸이다.
외환 시장에선 탄핵안 가결로 그동안의 환율 상승분을 일부 반납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달러 추세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1440원을 넘보고 있다. 시장에선 현재 정치적 불안감이 경제와 금융까지 전이된 상태로, 이러한 위험 요인이 제거될 때까지 고환율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인터뷰한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지만 외환이나 금융 쪽으로 충격을 준 부분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까진 1430원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취임 이후에는 트럼프 2기 내각의 방향성에 따라 1450원까지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면서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라 80조원에 달하는 투자 자금이 내년 11월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 하반기에 들어서 환율이 진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환율에 부정적이더라도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추가로 단행해 한국 경제의 모멘텀을 제공하고, 추경을 통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론 기업이 살아나고 투자도 유치되는 등 한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환율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