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수 부진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고자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카드 우대수수료율 인하로 약 305만 영세·중소가맹점에 3000억원 수준의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금융당국과 인하된 수수료 때문에 카드사 부담이 커져 결국 민간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업계의 입장이 상충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 경감을 위해 연매출 구간에 따라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했다. 내년 2월부터 연매출 10억원 이하 영세·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1%포인트, 연매출 10억~30억원 이하는 0.05%포인트 인하한다. 체크카드 수수료율은 모든 영세·중소가맹점에 0.1%포인트 내린다.
연매출 30억~1000억원 이하의 일반가맹점은 수수료율을 인상하지 않고 현행 수준으로 3년간 동결했다.
우대수수료율 조정대상 금액 약 3000억원은 매출 구간에 따라 배분했다.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에 약 40%, 연매출 3억~10억원 이하는 약 43%, 연매출 10억~30억원 이하는 약 17%다.
적격비용에 대한 재산정주기도 3년에서 6년으로 조정한다.
결제 원가 개념인 적격비용은 3년마다 재산정주기를 정하고 적격비용을 산정해왔던 것을 원칙적으로 6년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다만, 관계기관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3년마다 재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카드 수수료율은 2012년부터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하면서 지금까지 다섯 차례 낮췄다.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은 1.5%에서 0.4% 수준까지 인하됐다.
카드업계는 이미 카드 수수료는 내려갈 대로 내려갔다는 입장으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이번 수수료율 개편안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카드노조협의회 측은 “개편안에 따르면 연매출 10억원 이하 영세·중소가맹점 대부분이 카드수수료 부담보다 매출세액 공제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밝힌 것을 보면 더 이상 수수료 인하 명분도 실질적인 효과가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수수료 정책을 규탄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렇게 내려간 수수료율은 본업인 결제에서의 수익도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수익 중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가맹점수수료 수익 비중은 2019년 41.4%, 2020년 40.9%, 2021년 42.1%를 기록하다 2022년 38.9%, 지난해 38.5%로 내려왔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우대수수료율 인하로 신용판매부문의 적자폭은 더욱 확대돼 카드사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섯 차례에 걸친 지속적인 가맹점수수료율 인하로 소비자 혜택 감소 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재산정 시마다 반복되는 이해당사자 간의 소모적인 갈등 등 감안할 때 이번 재산정 주기의 연장은 합리적 결정으로 보여진다”고 더했다.
수수료율을 낮춘다고 내수가 진작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돈을 안 들이고 카드사의 팔을 꺾어서 이미 낮은 수수료율을 또 낮추겠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다른 쪽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잘못된 영업 행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고 싶다면 카드 수수료보다 배달 수수료 등을 개선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