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 결혼은 옛말…재벌가 혼인 유형 변했다

- 정관계 중심서 재계 및 일반인으로

- 세대 내려갈수록 확대되는 추세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의 혼맥이 과거 정·관계 중심에서 최근 재계 및 일반인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12일 CEO스코어가 지정 총수가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 81곳의 총수 일가 가운데 혼맥 분류가 가능한 380명을 분석한 결과 오너 2세의 정·관계 혼맥 비중은 24.1%였으나 오너 3세와 오너 4~5세로 내려가면 각각 14.1%와 6.9%로 하락했다. 반대로 재계 간 혼맥과 일반 가정과의 혼맥 비중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정·관계 혼맥은 옛말, 24.2% → 7.4% 뚝

과거 오너 2세는 정·관계와의 혼맥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오너 3세, 4~5세로 갈수록 정·관계 혼맥 비중은 14.1%→6.9%로 낮아졌다.

 

기업 집안끼리의 혼맥은 오너 2세 34.5%에서 오너 3세 47.9%, 오너 4~5세 46.5%로 높아졌다. 총수 집안과 일반 가정 간 혼맥도 오너 2세 29.3%, 3세 23.3%, 4~5세 37.2%로 확대 추세다. 구체적 사례로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오너 4세)는 아나운서 이다희 씨와, 현대차그룹 4세 선아영 씨(정성이 이노션 고문 딸)는 배우 길용우 씨의 아들과 혼인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딸 정유미 씨는 일반인과, 아들 정준 씨는 프로골퍼 리디아 고와 결혼했다.

 

결혼 시기가 확인된 361명을 기준으로 2000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변화가 선명하다. 2000년 이전 재계의 정·관계 혼맥 비중은 24.2%(58명)였으나 2000년 이후 7.4%(9명)로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재계 간 혼맥은 39.2%(94명)에서 48.0%(58명)로 8.8%포인트 증가했고 일반인과의 혼맥도 24.6%(59명)에서 31.4%(38명)로 6.8%포인트 늘었다. 과거에는 정·관계 혼맥이 사업에 유리했지만 최근에는 정치권과의 연계가 오히려 감시·규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룹 간 연결…LS 최다, LG·GS 뒤이어

그룹 간 혼맥 연결도에서는 LS가 가장 광범위했다. LS는 두산, 현대자동차, OCI, BGF, 삼표, 사조, 범 동국제강(KISCO홀딩스) 등 7개 대기업과 혼맥으로 연결됐다. LG와 GS는 각각 4개 그룹과 이어졌다. LG는 DL·삼성·GS·두산과, GS는 LG·삼표·중앙·태광과 혼맥을 형성했다. GS를 범GS 계열로 확장하면 금호석유화학, 세아와도 연결된다. 현대차·태광·BGF·삼표는 각각 3개 그룹과 혼맥이 있다. 현대차는 LS·삼표·애경과, 태광은 범롯데(산사스식품)·GS·동국제강과, BGF는 아모레퍼시픽·LS·삼성과, 삼표는 GS·LS·현대차와 각각 얽혀 있다. 이외에도 농심·한진·두산·코오롱·OCI·세아·아모레퍼시픽·애경 등이 2개 그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 농심은 아모레퍼시픽·BGF와, 한진은 조양호 전 회장의 형제인 고 조수호(전 한진해운 회장)·조정호(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씨를 통해 롯데·LG와 간접 연결된다.

 

정·관계 혼맥 축소와 재계·일반인 혼맥 확대는 기업 환경 변화와 사회적 감시 강화의 결과로 보인다. 정치권 연계가 사업 추진에 직접적 이익을 제공하던 구조가 약화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계 간 네트워크는 사업 시너지와 지배구조 안정에 기여할 수 있기에 혼맥이 강화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반인 혼맥 확대는 미디어·문화·전문직 등 외부 생태계와의 연결성을 키워 브랜드·ESG·인재 유입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도 “혼맥 자체가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보긴 어렵고, 오너 리스크 관리·투명한 지배구조 설계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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