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부도 의사도 ‘국민 인질극’은 그만

권영준 부장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긴박했다. 양수가 터진 산모는 자정 직전 급하게 119구급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구급대원은 3곳의 병원에 문의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 돌아온 대답은 ‘수용할 수 없다’, ‘의료진이 없다’, ‘신생아실이 없다’였다. 다행히 한 병원으로부터 산모를 받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신생아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만 유도 교육을 받았던 구급대원은 산모의 동의를 얻은 뒤 119 종합상황실 지도의사의 의료 지도에 따라 분만을 유도했다. 산모는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결국 구급차에서 출산했다.

 

 의료진이 없어 응급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의료강국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맞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결정하면서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4·10 총선에서 야권에 참패한 데 이어 의대 증원을 앞세운 의료 개혁마저 실패한다면 입지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았지만, 벌써 레임덕 얘기가 나올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료 개혁 실패는 사실상 결정타가 될 수 있다. 의대 증원을 철회할 리 만무하다.

 

 의사들도 강경하다. 전공의 집단 사직뿐만 아니라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 수업 거부를 하고 있다. 사직서를 내는 의대 교수들도 늘고 있다. 결국 정부와 의사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정부의 입장도, 의사 집단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고, 대의가 뚜렷하다. 이는 맞고 틀리다의 문제로 해석해선 안된다. 다름의 과정을 하나로 일치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현 시점에서 정부도 의사도 놓치고 있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의료개혁과 연결돼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이 무엇인지 지속해서 확인하고 분석해야 한다. 정책 방향을 결정한 상태에서 의사 집단 사직과 같은 잡음이 생겼다면 ‘Why’를 계속 묻고 답해야 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강한 힘이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면, 국민을 볼모로 삼을 이유가 없다. 현재 의사들의 파업은 국민 건강을 인질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는 꼴 밖에 안된다. 이 와중에 전공의 군복무 기간 단축을 복귀 조건을 내거는 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어떤 국민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할까.

 

 실제 영국에서는 2016년부터 주니어 의사들이 처우와 근무여건 개선을 이유로 파업을 했다. 아직도 파업은 계속되고 있으니 꽤 긴 시간이다. 장기간 파업을 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한 가지는 긴급 및 응급의료다. 물론 전면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 시니어 의사들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 국민 건강을 지켰다. 이스라엘 역시 2011년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지만, 긴급 및 응급 의료는 지속했다.

 

 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나 긴급 및 응급 의료는 절대 멈춰선 안 될 문제다.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정부, 그리고 집단의 힘이 정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 모두 더는 국민을 볼모로 삼지 않길 기대한다.

 

권영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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