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하고 맑은 기운 가득...경북 영주의 여름

소수서원 취한대

[영주=글·사진 전경우 기자] ‘세상에서 피신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면 경북 영주가 답이다. 옛부터 소백산 자락 일대는 십승지(十勝地)의 으뜸으로 쳤던 땅이다. 현대에 와서도 영주의 가치는 유효하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있고 천년고찰과 옛 선비들의 풍류가 남아있다. 가장 한국적인 여름 풍경을 느껴볼 수 있는 명품 여행지로 손색 없다.

소수서원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부석사와 더불어 영주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문화재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수서원은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유학자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을 기리고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데서 시작된 조선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소수(紹修)’라는 이름은 학문을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한 인재가 무려 4000명에 달한다.

소수서원에서 유생들이 글을 읽는 모습.

 국내에서 유명한 서원은 대부분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는 물가에 있다. 옛 사람들은 꿈꿔왔던 이상향을 현실에 구현했다. 연화산 자락 소수서원 경내에도 죽계라는 시내가 흐른다. 건너편에 보이는 그림 같은 정자이름은 취한대(翠寒臺). 비취 ‘취’(翠) 자와 차가울 ‘한’(寒) 자다. 서원 입구의 소나무 숲도 경주, 안면도에 뒤지지 않는 명품급이다. 서원 내부에 들어가면 지금도 유학을 공부하는 어르신들이 ‘중용’, ‘대학’ 등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비세상

▲선비세상

 영주에는 과거의 흔적만 있는것이 아니다. K-문화 테마파크 ‘선비세상’이 오는 9월 3일 문을 연다. 부지 면적만 96만974㎡ 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영주시는 사업비 1700억 원을 투입, 9년 만에 선비세상을 완공했다. 한옥·한복·한글·한지·한식과 한국 음악 6개 테마의 ‘K문화’를 즐길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방문객은 한옥 마을 곳곳을 누비며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한복촌의 영주도령 장원급제 행렬을 구현한 오토마타극(기계식 인형극)이 가장 눈에 띄는 볼거리다. 

오토마타극
횔인심방 웰니스 공연 체험 프로그램

 개장 이전 방문한 취재진을 위해 마련한 체험 프로그램도 신선하다. 퇴계 이황의 활인 심방과 싱잉볼, 아로마테라피 등을 융합해 만든 새로운 명상법이다. 커다란 정자에 누워 새소리,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악기의 파동에 몸을 맏긴다. 봄에는 '휴~', 여름은 '하', 가을은 '스~', 겨울은 '취~' 소리를 내는 옛 선현의 호흡법이 재미있다. 이 프로그램은 웰니스 콘텐츠를 만드는 스타트업 ‘숨숨’과 요가, 명상, 사운드배스 등을 운영하는 ‘숲의 그림자’팀이 함께 만들었다. 선비세상은 MZ세대의 감성에 맞는 다양한 선비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선비세상은 공식 개관을 앞두고 이달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과 광복절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임시개방을 진행한다. 영주시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다. 일일 입장객은 1500명 이내로 제한된다. 실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 폭염이나 폭우 등 악천후에도 이용이 가능하다. 소수서원이 지척에 있어 연계코스로 묶어도 좋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이후 부석사 무량수전 기념사진 포즈는 다 비슷해졌다. 전각 기둥 중앙 부분이 하얗게 닳은 흔적이 보인다.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고려시대 건축미를 엿볼 수 있는 귀한 건물이다. 무량수전 서쪽 암벽에는 커다란 바윗덩어리인 ‘부석(浮石)’이 있다.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고 해 뜬 돌, 부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석을 지나면 작은 불상이 있다. 부석 주변은 동물에게는 천혜의 은신처다. 때때로 고양이 가족이 여행객을 반긴다.  가장 멋진 풍경을 보려면 무량수전을 마주보고 오른편으로 올라가야 한다. 무표정한 삼층석탑과 무량수전 사이에 서서 내려다 보이는 소백 연봉 풍경은 언제봐도 아름답다. 부석사는 경사가 가파른 계단식 사찰이지만 숲이 울창하고 그늘이 많아 여름에도 가볼만 하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무섬마을

 부석사에서 무섬마을까지는 차로 30분 넘게 달려야 하는 먼 거리다. 그래도 꼭 이 마을에 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외나무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길이 마을을 원형에 가깝게 휘돌아 나간다.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외나무 다리는 마을 풍경의 백미다. 물안개가 피는 새벽녘이 특히 아름답다. 이 다리는 물난리때마다 다시 놓기를 반복해왔다.

무섬마을 내부

무섬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민박 체험이 가능하다. 깔끔한 한옥형 호텔을 생각하면 크게 실망하겠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 동네 가운데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이름도 그저 ‘편의점’이다. 24시간 영업은 하지 않으며 일찍 문을 닫는다. 외부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검색하면 15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다. 미리 시내에서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사오는 것이 현명하다. 

풍기 인견백화점

▲풍기인견

 영주시 풍기읍의 특산물은 인견이다. 인견은 나무에서 추출한 자연섬유로 땀 흡수력이 탁월하고 발수가 잘되어 일명 ‘에어컨 섬유’로 불린다. 1910년경부터 평안남도 연변과 덕천 등지 주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이 지역에서 견직물 직조 기술을 가지고 왔던 사람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옷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풍기 인견의 시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풍기 지역으로 북쪽에서 피난민이 내려오며 풍기인견 산업은 발전을 거듭한다. 인견 공장이 몰려있는 지역에는 ‘풍기인견백화점’ 등 판매시설도 함께 있다.

정도너츠, 서부냉면, 묵밥

풍기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아 이북식 냉면 노포도 있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서부냉면은 ‘묵밥’, ‘정도너츠’와 함께 풍기에서 꼭 맛봐야 하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kw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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