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의 그림자, 신뢰 잃은 금융권] 금융권 내부통제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銀, 2년만에 또 100억 횡령…대출·입금 등 승인절차 미준수
-당국 내부통제 혁신방안 미흡…임직원 도덕적 해이 등도 문제

그래픽=권소화 기자

 우리은행이 또 수백억원대 횡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금융권 전반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 전반적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윤리경영’ 구호 무색한 우리은행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경남 김해서부경찰서는 지난 13일 우리은행 김해지점에서 100억원 상당의 고객 대출금을 횡령한 30대 A씨를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직급이 대리인 우리은행 직원 A씨는 올 초부터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빼돌린 후 해외 선물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횡령한 돈을 가상화폐와 해외 선물 등에 투자해 60억원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파악했다.

 

 우리은행의 거액 횡령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6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B씨는 은행이 관리하던 기업 출자전환주식과 대우일렉트로닉 매각 계약금을 총 8회에 걸쳐 약 697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횡령했다. 이에 금감원은 올해 1월 우리은행에 ‘기관경고’, 관련 직원들에게 ‘정직’ 등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한 뒤부터 전 계열사 임직원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임 회장은 취임식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금융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최고경영자(CEO)들이 솔선수범해서 윤리경영 문화를 완성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시 횡령 사고가 터지면서 이러한 임 회장의 행보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 상반기에만 은행권 금융사고 6건 달해

 

 금감원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로 보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리 직급 은행 직원이 대출·입금 등을 실행하려면 팀장·지점장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은행 지점이 내부통제 기준과 여신 매뉴얼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올해 초 발생한 횡령을 조기에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금융업계에서도 지난 2022년 11월 마련된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2년 700억원대 횡령 사고 후 은행권과 금감원은 공동으로 사고 예방에 필요한 구체적 운영 기준을 규정하고, 사고 취약 업무절차를 고도화하는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세부적으로는 ▲본점, 동일부서 장기근무자에 명령휴가 확대 ▲거액 자금·실물거래 직무분리 ▲임원에 사고예방대책 마련 및 준수 여부 점검 의무 부여 ▲부점단위 내부통제 제도 및 정책 실행 ▲자금인출 시 기안·직인날인·지급시스템 상호 연계 ▲수기 기안문서 전자문서시스템 등록 및 문서번호 자동부여 ▲외부 수신문서 전산등록·적정성 확인 의무화 등이다.

 

 이번 우리은행 사고 역시 내부통제 혁신 방안만 제대로 따랐다면 충분히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직원 A씨가 은행 자금을 인출할 때 기안문서 결제 내용을 검증하고, 자금 지급 시 직인날인 승인정보를 검증했다면 이러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금융업계 곳곳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나타났다. 지난해 금감원은 BNK경남은행 현장 검사에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업무 담당 직원이 15년 동안 총 2988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역대 최대 횡령 규모에 속한다.

 

 올 상반기에는 시중 주요 은행에서 무려 6건의 금융사고가 일어났고 사고 금액은 650억원에 달한다. NH농협은행은 올해 3건의 업무상 배임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3월에는 109억원, 4월에는 11억원과 53억원 규모에 해당한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104억원대, 4월에는 272억원대의 업무상 배임 사고를 공시했다.

 

 오태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사고는 통상 업무상 미흡 또는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등에 따른 운영위험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한다”면서 “해외에서는 운영위험 관리 실패에 따른 금융사고로 회사가 파산에 이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그간 금융사고가 거듭 발생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중요성에 대한 임직원의 인식, 금융회사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 관리 및 조직문화 등에서 미흡함이 드러나고 기본적인 내부통제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많이 발견됐다”며 “그간 내부통제 규정이 형식적으로만 지켜지고 실질적인 관리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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