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어벤저는 성능 좋은 전기차 신차로 이미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사골처럼 우리면 우릴수록 깊은 맛이 나오는 지프만의 디자인 원형을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프 어벤저 디자인 & 테크 데이가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화상 회의 형태로 진행된 행사로 지프 어벤저의 성능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는 자리였다. 특히 군용차에서 출발한 지프가 그동안 대중차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은 전통을 활용한 결과다.
◆사골 같은 윌리의 재활용법
지프 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림이 있다. 무엇보다 전쟁과 연결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출발점은 1940년대 미 육군을 위해 생산을 시작한 군용차량 윌리스일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 우리 군에서도 ‘구형 지프’라 불리던 윌리스를 토대로 발전을 거듭한 차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후 지프가 일반인들에게 팔리면서부터는 험난한 지형을 뚫고 먼지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부터 지프의 모든 차에는 윌리스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변주 전략이 적용된다.
80여년만에 전기차 어벤저를 내놓은 지프는 이번에도 윌리스를 염두에 뒀다. 맷 나이퀴스트 지프 상품기획 부사장은 “윌리스부터 시작된 핵심 가치를 보호하면서도 고객층이라든지 전체적인 도달 범위를 확대해 가는 것이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라며 투 도어 랭글러를 예로 들며 “1941년 오리지널 윌리스와 굉장히 흡사한 차로 이런 아이코닉한 디자인이 신제품 라인업에도 모두 반영돼 왔다”고 소개했다.
특히 다양하게 신차에 변주해 적용하는 윌리스의 그릴부터 비도로 주행 성능 및 장비, 그리고 실외활동에 최적화된 문화 등은 지프의 여러 차를 대표하는 브랜드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지프가 표방하는 최상의 가치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맷 나이퀴스트 부사장은 “지프 커뮤니티를 보면 굉장히 브랜드를 사랑하는 많은 열정적인 고객들로 이루어져 있다”면서 “저희는 항상 ‘우리가 브랜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들이 지프 브랜드를 만든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프는 스탤란티스의 여러 자동차 브랜드 중 현지화에도 뛰어나다. 윌리스의 디자인 전통을 지켜나가면서 동시에 전 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매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프는 디자인 본부를 미국 디트로이트에 두고 이탈리아 토리노, 중국 상하이,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치해 미국에서 확장해 전 세계 대표 지역을 아우르는 디자인 연결을 가능케 했다.
실제 이 차를 설계하는 데 참여한 이탈리아의 다니엘레 칼로나치 지프 디자인 헤드는 “아시다시피 스텔란티스가 소유하고 있는 여러 브랜드 중에서도 지프는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저희가 4개의 스튜디오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면서 “지역별로 고객들이 원하는 선호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을 전부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4개 스튜디오 디자이너들이 모두 함께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어찌보면 윌리스는 반복해서 끓여도 맛이 우러나오는 사골과 같은 존재다. 올해 국내에 출시한 지프의 소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어벤저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전기차에서도 더욱 극대화한다.
◆지프 어벤저, 이렇게 가볍고 실용적인 전기차라니
순수 전기차인 어벤저는 유럽 등에서는 국내보다 2년 먼저 출시해 10만대 이상 판매됐다. 가장 미국적인 차 브랜드인 지프의 전기차 신차가 돌풍을 일으킨 셈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유럽 각국의 정서상 전기차가 통할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이미 유럽 전기차 시장은 현지 브랜드와 중국 브랜드까지 가세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일단 어벤저의 뛰어난 성능이 어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 차의 제원은 매력적이다. 비주행 능력과 함께 1회 충전 시 유럽 WLTP 기준으로 400㎞까지 주행할 수 있고 도심 주행으로는 550㎞또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럽 사람들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이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확장한 디자인의 몫이 더 컸다는 분석이다. 다니엘레 칼로나치는 “외관이나 내부가 어떤 식으로 디자인 돼있는지 보면 최초의 오리지널 모델 윌리스에 포함된 여러가지 디자인 요소들이 그 이후에 나오는 지프의 다른 모델들에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면서 “그 만큼 윌리스가 지프의 DNA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벤저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이러한 디자인 전통에 실용성을 훌륭하게 가미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니엘레 칼로나치는 대표적으로 박스형 스타일을 사례로 들며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박스 스타일이 공간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계기반이나 라디오 부분을 운전자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탑승객이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니엘레 칼로나치는 “우리는 이걸 ‘민주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서 “운전자 뿐 아니라 보조석, 뒷자석에 앉은 모든 탑승자를 위한 디자인 원칙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지프 어벤저는 윌리스를 제외하고 지프가 지금까지 선보인 차종 중 가장 작은 차체를 자랑한다. 그러면서 젊은 층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세련되면서도 재미있는 디자인에 집중했다. 여기에 전기차임에도 내연기관 차처럼 비도로주행에 최적화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 트렁크 용량 등 각종 실용성도 최대화하기 위해 디자인과 결합시켰다.
이에 대해 함께 어벤저 디자인에 참여한 마르코 몬테펠로소 지프 유럽 상품기획 매니저는 “가장 큰 도전과제가 지프가 가진 DNA를 작은 차체에 다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이를 위해 기능 지향적 디자인, 상시 연결된 인포테인먼트, 성능 등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어벤저는 전기차다. 지프의 새로운 e-CMP2 모듈러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해서 개발한 차다. 100㎾ 고속 충전기를 사용할 경우에 2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24분이면 충분하며 보통 하루 주행 거리인 30㎞를 충전하는 데는 단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차체에 탑재한 400V 리튬이온 배터리와 M3 모터는 스텔란티스와 NIDEC 리로이 소머사가 50대 50 출자한 조인트 벤처인 eMOTORS에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115㎾h의 힘과 260Nm의 토크를 발휘한다.
안전과 성능을 위한 테스트도 무수히 거쳤다. 마르코 몬테펠로소는 “전체 시스템에 대해서 굉장히 테스트를 많이 거쳤다”며 “400만 ㎞를 달리면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했고 극한의 기후에서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