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가 세금 다 낼 것 같으면 회계사, 세무사를 왜 쓰나?

 

 

 16년 전 대형 회계법인에서 실무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모 회사에서 본인들은 연구가 주된 활동이니 회사의 모든 비용에 대해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를 신청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연구인력개발비는 연구전담인력의 인건비 등 세법에 열거돼 있는 비용에 대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강력한 세제혜택이다.

 

 그런데 연구와 상관없는 임원 및 영업인력뿐 아니라 각종 사무용품과 자동차 리스비용, 임원들의 개인적 지출, 접대비, 일반 사무실 임차료까지 모두 세액공제에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세무상 리스크와 가산세 효과를 고지했으나, 세무대리인은 말 그대로 대리하는 역할인지라 결국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세액공제를 신청했다. 당시 그 회사 담당자의 주된 논지는 부당하게 세액공제 30억~40억원을 신청하더라도, 경험적으로 세무조사 나오면 부당하게 공제받은 세액의 60~70% 정도만 과세되더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일에 대한 높은 자부심 하나로 격무를 버티며 살고 있었는데,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해프닝을 겪은 후 그 회사는 다음해 다소 규모가 작은 회계법인으로 세무대리인을 교체했는데, 법인세 신고기간에 담당 회계사에게 전화가 왔다. 여러가지 사실관계 확인과 하소연이 뒤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추후 알게 된 사실인데, 그 회사는 이른바 일 좀 한다는 회계법인과 세무법인을 전전하면서 1~2년에 한번씩 세무대리인을 교체하다가 결국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사실 유튜브 썸네일에나 사용될 법한 이 글의 제목은 필자가 당시 실무 책임자로서 신고 직전 마지막으로 설득을 위해 그 회사 담당자와 유선상 대화를 나눌 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말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그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회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실수를 했다. 첫째 세무대리인은 절대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부분에서 리스크를 책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객에게 리스크를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원하는대로 신고됐다면 그 책임은 고객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를 강하게 주장했던 그 담당자는 임원이 됐고, 이후 세무조사 시 발생한 세부담액은 전적으로 회사가 부담하게 됐다. 이는 결국 오너의 손실로 이어졌다.

 

 둘째 당장의 세부담액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특정한 방법을 사용해 신고 납부 세액을 감소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앞서 담당자가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해당부분에 대해 조사시점에 모두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예측가능성이라는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세부담액을 과도하게 감소시키는 행위는 현재의 예측 가능한 현금 유출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예측 불가능성을 교환하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란 과거에 과도하게 세부담을 줄여 이득을 본 부분은 기억에서 휘발되고, 조사 시 부담한 세액에 대해선 급작스러움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특히 과거에 세무조사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향후 모든 경제적 행위를 할 때 마다 과거에 과다하게 세부담을 감소시킨 행위가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을지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과거의 세금을 줄이기 위한 행위가 미래의 경제적 행위마저도 제약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미래의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세금을 무조건 많이 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세법의 여러 혜택들을 넓게 스캔하되, 그 요건을 깊게 검토하고 이를 적용해야 미래에 큰 걱정이 없다. 그러려면 평생 세법조문 하나 안 찾아볼 것 같은 세무대리인은 피하고, 자신만 아는 신묘한 절세방안을 자랑하는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큰 오류는 없으리라 본다.

 

<KB국민은행 기업성장지원부 최정욱 공인회계사>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