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블랙홀 빠진 韓 경제] '비상계엄 일주일' 정국 혼란에 기업·소상공인 초비상

정치리스크에 증시·환율 요동
산업계, 고환율에 채산성 악화 불가피
내년 예산 4.1조 감액 국회 처리
사상 초유 野 단독 수정안 통과
대통령 등 체포 결의안 가결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경제가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일주일간 금융시장,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데 더해 주요 경제 법안의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등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 부진 장기화, 미국 신(新) 행정부 출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조속히 계엄사태의 후폭풍을 잠재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가·환율, ‘정치리스크’에 직격탄…산업계∙자영업자도 초비상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일 코스피는 전거래일 대비 1.44% 급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 등 정국 혼란의 영향이다. 코스피는 지난 9일엔 전거래일 대비 2.78% 급락한 2360.58에 마감하며 2400선도 내줬다. 코스닥은 충격이 더 컸다. 지난 4~9일 중 코스닥은 7.4% 급락했다. 특히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안 처리가 무산된 후 첫 거래일인 지난 9일엔 전거래일 대비 5.19%나 하락했다. 외환시장도 변동 폭이 커졌다. 지난달 중 1400원 선을 오르내리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1427.00원에 주간거래를 마감했다. 

 

 산업계도 시계 제로인 상황이다. 이들은 주로 1300원 중반대 환율을 예상하고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했지만, 종전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락하면 산업계의 생산비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미국 현지에 공장을 건설 중인 반도체 및 이차전지 기업들은 투자 비용이 불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향후 장비나 설비를 반입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환율에 취약한 항공 업종도 성장 날개가 꺾일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주요국이 한국에 대해 여행 경보를 발령하면서 여객 수요 감소도 불가피해진 데다 국내 여행객의 해외여행 수요도 고환율로 위축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철강업계도 철광석과 연료탄을 수입해야 하는 구조라 급등한 환율이 원가 부담을 키울까 염려하고 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무엇보다도 외교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현 상황이 불확실성을 더욱 키운다. 다음 달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및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 한국 정부로선 이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비상계엄 선포 이후 회식이나 소비 등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아우성치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까지 줄어들면서 관광업계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피해를 호소하는 중이다. 

 

◆내년도 예산안, 사상 초유 야당 단독수정안 통과 논란 예고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며 경제살리기 법안도 표류하고 있다. 국내 핵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 반도체 특별법 제정 논의를 비롯해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 경제∙산업계의 주요 법안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됐다.

 

 상황이 이렇자 정국 불안이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정치가 혼란스러워도 경제엔 문제가 없다는 걸 대외에 적극적으로 알려서 불필요한 불안을 잠재우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를 야기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적어도 여∙야는 정국 불안정이 경제 분야로 전이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총지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안에서 증액 없이 총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야당 단독 수정안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수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이어 이날 본회의에서도 정부∙여당의 동의 없는 단독 감액안을 강행 처리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날 예산안 상정 직전 정부∙여당의 증액안을 제시하며 야당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최종 결렬됐다.

 

 또한 이날 국회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5000만원이 넘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소득에 매기는 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일을 2025년 1월 1일에서 2027년 1월 1일로 2년 유예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함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 등 주요 인사 8명의 신속 체포를 요구하는 결의안과 상설특검 수사요구안도 가결시켰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소추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민주당은 12일 본회의에서 박 장관과 조 청장 탄핵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오현승∙김재원∙이화연∙최정서 기자 hsoh@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