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 없이 정부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내년 추가경정예산안 논의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위축된 실물경제에 대응하려면 곧장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지금은 탄핵이 가장 큰 이슈인 만큼 민주당은 탄핵 국면이 마무리된 이후에 추경 편성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은 전날 내년 정부 예산안 중 4조1000억원을 감액한 673조3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감액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야당 단독으로 지난달 29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부의하면서 예산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정치권이 혼돈에 휩싸이면서 여·야·정 협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후 민주당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으로 우리나라 대외신인도 등 하락이 우려된다며 단독으로 감액예산안을 처리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계속했지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경 시기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 탄핵 이후로 점쳐진다. 민주당 내에서 현재 탄핵이 가장 큰 이슈인 만큼 추경 시기를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탄핵이 가결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이후에 추경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민주당이 원하는 지역화폐조차 내년 예산안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내년도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우원식 국회의장은 전날 예산안 통과 뒤 “2025년도 예산안은 이렇게 통과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민생 예산 추경으로 확충돼야 한다”며 “정부는 내년도 예산 집행이 시작되는 즉시 추경 편성을 위한 준비에 착수해 주시기 바란다”고 공식적으로 추경 편성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한국정치 불안 대응 전략’ 보고서에서 “정치적 불안 국면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서 “조기 대선 시 야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은데, 내년 상반기 중 내수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 시나리오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추경에는 이번 예산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요구한 48개 증액 리스트들이 우선순위에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1조원을 포함해 무상교복, 아동수당, 유아교육비, 역사왜곡 대응, 군 장병 급식비, 신재생에너지, 마을기업 육성, 공공배달앱 등이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올해 예산 논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지역구 예산이 반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