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에 따른 소비 감소로 소상공인들이 눈물 흘리는 가운데 극히 일부 ‘특수’를 누리는 곳도 있다. 집회 집결지 인근에 있는 편의점, 카페, 식당들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는 행상인들이 대표적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은 보수단체 집회가 열리는 동화면세점 앞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11일 역사 내 편의점엔 LED 양초, 핫팩, 방석을 판다는 내용의 종이들이 외부 유리 곳곳에 붙어있었다. 모두 집회 관련 물품들로, LED 양초는 이미 ‘완판’된 상태였다. 근무자는 “수량이 꽤 많았는데 어제오늘 다 팔렸다”며 “추가 발주는 했는데 언제 물건이 들어올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보수단체는 지난 7일 토요일에 이어 9일부터 평일에도 집회를 열고 있다.
동화면세점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있는 편의점 근무자는 “집회 참석자들은 컵라면을 가장 많이 산다. 핫팩과 방석(자리), 일회용 보조배터리를 찾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손님이 집회 참석자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빨간 모자를 쓰신 분들은 대부분 집회 참석자더라”고 답했다.
그는 “평일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정신없이 바빴다. 원래 혼자 일하는데 그때는 사장님(점주)도 같이 일을 했다. 컵라면이 하루에만 250~300개 팔렸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이곳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날이다. 당시 주최 측 말대로라면 100만 명, 경찰의 비공식 추산으로는 2만 명이 모였다. 이 매장은 기동경찰에게 10% 할인을 하는 곳인데 그들은 주로 바나나를 산다고 한다.
인근의 또 다른 편의점에도 ‘따뜻한 음료, 건전지, 일회용 보조배터리, 돗자리, 휴대용 방석, 다양한 먹거리’를 판다는 현수막이 외부 유리에 붙어있었다. 근무자는 “휴대용 방석은 최근에 들어온 물건”이라며 “일회용 보조배터리도 평소에는 거의 안 나가는 물품인데 지난 4일에는 1시간 동안 3개나 팔렸다”고 말했다. 4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선언한 비상계엄을 해제한 날이자 광화문에서 민주노총∙참여연대 주도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날이다.
국회의사당 인근 편의점은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손님이 몰리고 있다. 집회 참가자의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주최 측 발표상으로 7일 100만명(경찰 비공식 추산 약 15만명), 9일부터 11일까지 약 12만명(경찰 비공식 추산 1만8500명)이 모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편의점의 근무자는 “특별히 많이 팔리는 품목이 있지는 않고 전체적으로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오후 6시30분쯤 김밥류는 이미 모두 팔린 상태였다.
행상인들도 이곳으로 몰렸다. 이들은 LED 촛불과 응원봉을 좌판에 놓고 판매하고 이동식 포장마차에서 어묵, 붕어빵, 닭꼬치 등을 팔았다. 지난 10일 국회 근처 보도에 길게 이어진 이동식 포장마차 대열에서 한 상인은 “원래 평일 밤에는 여의도를 안 오는데 지금은 ‘대목’이라 왔다”고 말했다.
실제 오후 9시쯤 집회가 끝나자 꽤 많은 참석자가 포장마차를 찾아 출출한 속을 달랬다. 오후 10시쯤 장사를 접은 이 상인은 ‘장사 잘 되셨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내일 또 오시냐’는 질문에는 “그러려고 한다”고 답했다.
집회 장소 인근의 카페와 식당도 영향을 받고 있다. 국회 인근의 경우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중심으로 집회 시작 전과 종료 후 사람들이 몰린다. 10일 유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에서 한 남성이 집회 참가자를 위해 500만원 어치 커피를 선결제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매장 점장들은 집회에 따른 매출 등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본사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답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을 통해 확실히 집회로 인해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카페나 식당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전했다.
광화문 인근의 한 치킨·호프집은 11일 저녁 8시쯤 매장 테이블의 3분의 1 정도가 차 있었다. 점장은 “평소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원래 오던 회사원들이 오지 집회 참가자들은 거의 없다”며 “우리는 주말 영업을 하지 않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시청 쪽 가게는 주말에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