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일로 잡은 회사 송년회가 지난주 취소됐는데 마침 어제 참가 가능한 인원을 다시 조사하더군요. 당초 예정대로 다음 주 송년회를 진행하는 분위기입니다.”
18일 서울 용산구의 물류업체에서 일하는 회사원 우 모 씨의 말이다. 우 씨 사례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와 뒤따른 탄핵정국에 송년회를 취소한 기업 및 단체들이 국내 내수 진작을 위해 다시 연말모임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침체된 경기와 급등한 물가에 불안한 시국까지 겹치며 ‘혼수상태’에 빠진 내수경제에 송년회 등 단체모임이 ‘인공호흡기’로서 숨을 불어넣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드린다”며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국민을 향해 호소했다. 16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송년회를 예정대로 진행해 소상공인, 자영업자 살리기에 동참하자는 취지의 말을 임직원들에게 전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17일과 18일에 걸쳐 서울 강남의 주요 번화가와 회사 밀집지역 인근의 매장들을 돌아보니 실제로 송년회, 회식 등 모임의 단체손님이 소상공인들의 깊은 주름을 조금이나마 펴주고 있었다. 분명 거리에 사람이 많다고는 할 수 없었고, 내부 전체 테이블의 20%도 채우지 못한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손님이 꽉 차서 대기 줄까지 형성된 가게도 분명 적은 수는 아니었다. 대부분 고깃집과 횟집, 치킨 가게, 맥주 전문점으로 10인 이상 단체손님이 세 팀 이상 포함된 것으로 보였다.
양재시민의숲역 인근 고깃집 종업원은 가득 찬 손님으로 분주한 와중에 “평소에는 이 정도는 아닌데 오늘 근처 회사의 송년회로 40인 단체손님이 왔다”고 귀띔하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강남역 인근 맛집으로 소문난 고깃집은 대기 리스트의 번호가 36번까지 채워져 있었다. 이곳 종업원도 “다음 달 말까지는 평일 저녁 단체예약은 모두 찬 상태”라고 말했다.
양재역 인근 치킨집 점주는 “화요일은 특히나 손님이 없는 날인데 오늘은 단체손님이 20인, 8인, 6인이 있었다. 20인 단체는 근처 직장인 송년회”라며 “자영업자들에게 단체손님은 너무나 반가운 존재”라며 기뻐했다.
친목회 회원들과 양재동의 한 횟집을 찾은 전은희(67) 씨는 “같은 동네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인 ‘꽃들의 모임’ 송년회 자리”라며 “우리도 장사하는 사람들이라 돈을 써야지 경제가 돌아간다는 걸 안다. 경기가 안 좋아도 송년회는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기업 회사원들과 서민들이 팔을 걷고 나서 내수경제 회복에 힘을 쓰는 가운데 대통령 대행 체제의 정부도 경제를 되살릴 정책으로 작금의 비상 상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은 ‘특단의 내수 진작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오는 20일 국정안정 고위 당정협의회를 연다.
그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일관성 있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세워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대출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배달앱 수수료 인하, 지역화폐 활성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무너진 내수를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국경제는 수출의 비중이 상당히 큰 나라다. 지난 6월 한국무역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17%포인트로, 전체 경제성장률(1.36%)의 86.1%를 차지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5.7%로 2020년대 들어 가장 높았다.
결국 수출로 다시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신(新) 행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이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17~2021년의 ‘트럼프 1기’ 때보다도 더 강력한 통상 규제를 앞세울 것이 유력하다.
그 어느 때보다 외교력의 중요성이 커진 시기인데 탄핵정국으로 정부의 리더십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주요 산업체들이 자체적으로 현지 정∙재계 인사를 영입하거나 대관 채널을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을 대체할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면서 새로운 대안 찾기도 시급한 상황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