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여행중개업을 하는 청주에 사는 이 모(38) 씨는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한숨이 나온다. 코로나19 시절 사업을 중단했던 이 씨는 엔데믹 이후 여행 상품 문의가 들어오면서 사업을 재개했다. 이후 영업이 잘되면서 예전 성수기 때 실적을 잠시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점차 바뀌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비행기 티켓, 패키지 상품 문의 등이 늘기 마련인데,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이 씨는 “여름 휴가철, 연말이 여행업에서 성수기에 해당하는데, 코로나 때보단 괜찮지만 문의가 생각보다 많진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떡볶이집 장사를 하는 한 모(37) 씨는 최근 홀 담당 아르바이트생에게 더는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식당을 찾는 고객 수가 줄어들면서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주기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님도 평일 점심 장사에만 나오라고 하고, 한 씨는 혼자 음식 조리부터 포장, 홀 관리까지 할 생각이다. 한 씨는 “코로나19 시절엔 배달이 잘됐는데 지금은 배달, 홀 주문 둘 다 썩 좋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 외식·여가 등 소비가 위축되면서 서비스업 생산 증가 폭이 3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0%대로 떨어졌다.
고금리·고물가 기조 장기화로 내수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자영업자를 시작으로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서비스업 생산(불변지수)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0.8% 늘면서 증가 폭이 0%대에 머물렀다. 이는 2021년 2월(-0.8%) 이후 3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2021년 하반기부터 증가세를 나타낸 서비스업 생산은 최근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분기별 생산 증가 폭을 살펴보면 서비스 생산은 지난해 3분기 8.5% 증가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급락하며 지난 2분기 2.3%, 3분기에는 1.9%까지 주저앉았다.
산업별로 보면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에서 하락세가 눈에 띈다. 2021년 4분기부터 거의 매 분기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숙박·음식점업 생산은 올해 2분기 7분기 만에 마이너스(-2.7%)로 바뀐 이후 3분기(-4.7%)에는 감소 폭을 더 확대했다. 지난달에는 1년 전보다 5.2% 감소했다.
도소매업 역시 올해 2분기 1.1% 떨어져 10분기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3분기에는 1.9% 줄어 감소 폭이 더 확대했다. 지난달에는 3.7% 감소해 2020년 8월(-6.4%) 이후 3년 2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달성했다.
엔데믹 직후 여행 증가 등으로 계속 두 자릿수대 증가율을 보였던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도 증가 폭이 빠르게 둔화되면서 지난달 1.8%만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재화에 집중됐던 내수 부진이 엔데믹 이후 ‘보복 소비’(억눌렸던 소비 폭발)로 버텨온 서비스 분야까지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달 정부가 발표하는 산업활동 동향 분석 자료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6월 이후 정부는 ‘서비스업 개선세’를 긍정적인 소비 흐름 중 하나로 설명했다. 하지만 9월에는 ‘완만한 개선세’로 입장을 바꾼 뒤 10월 분석에서는 서비스업에 대한 평가가 없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최근 심화하는 소비 부진을 두고 고금리와 고물가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가계 실질 소득이 줄어들고 이자 부담도 늘면서 민간 소비 여력이 크게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고금리·고물가가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이러한 소비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긴축 기조가 얼마나 길어질지를 묻는 질문에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로 충분히 수렴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이고 현실적으로는 (6개월보다) 더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답했다.
이러한 소비 위축이 도소매업·숙박음식점업 등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어 코로나19 때 큰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또 다시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 대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고금리, 경기 둔화 등 경제 여건 악화로 그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하던 연체율이 상승 전환함에 따라 자영업자 부문의 누적된 잠재부실이 단기간 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며 “특히 자영업자의 부채는 일시상환대출과 만기 1년 이내 단기대출 비중이 높아 차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고 지적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