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필리핀 이모’와 충돌한 최저임금법

 

정부가 최근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선포했다. 그 일환으로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일손이 부족한 가사·육아 분야에 필리핀 인력을 오는 9월부터 활동케 하는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임금을 두고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들에게 최저 시급보다 낮은 즉, 차등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노동계가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해당 가사도우미는 필리핀 정부가 발급한 ‘Caregiving(돌봄)’ 자격증을 소유한 24세 이상 39세 이하 지원자가 대상이다. 또한 한국어 시험 100점 만점에 55점 이상을 받아야 하며 한국어와 영어 면접, 신체면접 등을 거쳐 상위 100명 안에 들어야한다. 선발된 인원은 외국인 근로자 비자(E-9)가 발급된다. 정부는 더 나아가 구인난에 허덕이는 간병인, 요양보호사 직종에도 외국인 인력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비자는 고용허가제 인력을 뜻한다. 고용허가제는 흔히 내국인 근로자를 충원하지 못한 중소사업장에서 외국인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제도다. 그동안 가사 돌봄 직종에는 해당 인력을 배치한 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범 운영해본 뒤 해당 직종에도 적용할지 고려해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문제는 임금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내년 2월까지 최저임금(9860원)으로 주 30시간 근로를 보장받기 때문에 적어도 월 154만원 정도의 급여가 적용된다. 주 40시간까지 근무하게 되면 206만원 정도를 받는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주된 이용층이 맞벌이 부부라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만큼 실효성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차등지급 적용 방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과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젊은 층의 크나큰 육아 비용부담 등이 골자며, 그 해법으로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예로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을 꼽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힘을 실었다. 지난달 4일 경제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현재 내국인 가사도우미와 간병인들의 임금수준은 부부들이 감당하기 부담이 큰 것이 현실”이라며 “거주 중인 16만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3만9000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와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서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현행 최저임금법상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과 관련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4조①항). 하지만 최저임금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에만 적용돼 그 이후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역시 표결에 부쳤지만 찬성 11표, 반대 15표로 최종 부결된 바 있다.

 

지난 21일부터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단연 차등지급 적용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제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요구하고 있고, 노동계는 차등적용 조항 폐지를 외치고 있다. 초유의 저출산으로 국가에 비상이 걸렸고, 현실적으로 볼 때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미룰 사항이 아니게 됐다. 최저임금위의 유연하고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재원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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