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 침체인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한국 경제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증시가 급락했을 뿐 아니라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경기 회복을 시도하는 실물부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수 결손으로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재정당국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해결책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최근 ‘티몬·위메프’ 사태까지 내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대외발 충격이 현실화한다면 한국 경제는 이중고에 놓일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6일 오전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폭락 하루 만에 급반등하자 양 시장에서 동시에 프로그램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전날 양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와 매도 사이드카가 동시에 발동하는 등 급락한 지 하루 만에 반등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전날 코스피 지수는 역대 최대 하락 폭(8.77%)을 기록했다.
전날 국내 증시의 폭락은 미국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미국 7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예상치를 밑돌고, 실업률도 증가하며 경기 침체 우려가 팽창됐다. 이에 미국 경기가 위축된다면 증시뿐 아니라 글로벌 실물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한층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육박했다. 7월 대미 수출은 102억 달러로, 7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올렸다. 12개월 연속으로 월별 최대 실적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고용지표를 거쳐 소비 경기 둔화 우려를 키웠고, 미국 씨티경기서프라이즈지수(CITI Economic Surprise Index)는 4월부터 하락세를 보였다”며 “제조업 지수 후퇴 및 고용지표 모멘텀 약화가 누적돼 지난달부터 경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소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경기가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2분기 소매판매는 지난해보다 2.9% 감소했다. 이는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폭 감소다. 2분기 설비투자도 지난해보다 1.3%, 건설기성(불변)은 2.4% 감소했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도 소비 심리를 위축하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수출의 50%를 차지했던 반도체, 자동차 등 대부분이 미국 시장과 관계가 많아 우리 하반기 수출 전망이 좋았다”며 “하지만 미국 실물 경제가 정말 안 좋아지고, 이 부분이 확인될 경우 우리 수출도 영향을 받고 전망이 어두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을 만한 방안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68조6000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9조9800억원(5.6%)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경제수석 등과 함께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해 “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에 따라 긴밀히 공조해 대응하고, 필요시에 시장 안정 조치들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 대응체계 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