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은 대표적인 자동차 명가다. 1930년대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독일 국민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하면서 탄생한 브랜드로 그간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하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아왔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 등이 소속된 폭스바겐 그룹은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 자동차 메이커다.
그런 폭스바겐이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폭스바겐 그룹은 지난 2분기에 전 세계적으로 224만3700대의 차량을 인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 감소한 규모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은 2023년 2분기 7.0%이던 영업이익률이 올해 6.6%로 떨어졌다. 폭스바겐 주가는 지난 5년 동안 3분의 1 가까이 하락해 주요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 중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폭스바겐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비용 절감,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독일 현지 언론은 폭스바겐 경영진이 최소한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을 각각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에만 볼프스부르크·잘츠기터 등 6곳에서 완성차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1937년 창립한 폭스바겐이 독일 공장의 문을 닫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경영진은 1994년부터 유지해온 고용안정 협약도 종료하겠다며 구조조정도 예고했다. 현지 매체 슈피겔은 공장폐쇄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 약 2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독일 내 폭스바겐 직원은 약 10만명이다. 독일 매체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폭스바겐 경영진은 2026년까지 100억 유로로 책정한 비용 절감 목표를 40억∼50억 유로 더 높일 계획이다.
폭스바겐 추락의 원인은 전동화 전환 실기(失期)다. 폭스바겐은 전동화 전환에 다소 미온적으로 대응한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였다. 전동화 전환이 시대의 화두로 부상했음에도 디젤차를 주력으로 밀었다.
폭스바겐이 내연기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이 테슬라를 비롯한 경쟁사 제품이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폭스바겐은 뒤늦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전기차 수요 부진과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이 뼈아프다. 미국 CNN은 올해 상반기 폭스바겐의 중국 내 판매량이 134만대로, 3년 전과 비교해 25% 이상 줄었다고 보도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 브랜드였던 폭스바겐은 지난해 그 타이틀을 중국 업체인 비야디(BYD)에 내줬다.
폭스바겐의 추락은 완성차 업체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실에 안주해 혁신과 미래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밀려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전동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속도 조절이 필요하지만 전동화 전환의 방향성은 옳다’는 기치 아래 전기차 인프라 및 생태계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32년까지 10년간 투자할 110조 원 중 3분의 1을 전기차 부문에 투입하기로 했다. 전기차 전략 ‘현대 모터 웨이’를 통해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을 올해의 6배인 200만 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은 최근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 2조6000억원대 투자를 결정했다. 이미 중국에서 18조원가량을 투자해 온 벤츠는 이번 추가 투자를 통해 중국 전용 순수 전기차 모델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가 무섭게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기존 자동차 브랜드들도 비상이 걸렸다”면서 “전기차 시장으로의 전환은 대세일 수밖에 없기에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현재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