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교수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진료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험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기 전보다 병원에 자주 가는 경향이 있다.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도 의료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과잉진료가 늘어날 수 있다’라는 행태를 도덕적 해이라고 불렀다. 보험시장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인 도덕적 해이는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저축은행, 서류 위조 사례 ‘현재 진행형’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의 부실화 사태는 경영진과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 감독 실패 등의 문제로 나타난 결과다.
상호저축은행법상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대출)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차명으로 불법적인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미노 부실이 이어졌다.
최근에도 저축은행은 서류 위조 등의 사기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2024년 8월 간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463건, 금액은 6616억7300만원이었다.
이 중 은행(264건, 4097억500만원)과 증권(47건,1113억3300만원)이 규모가 가장 컸고 다음으로 저축은행 647억6300만원(47건), 손해보험 458억1500만원(49건), 카드 229억6500만원(16건), 생명보험 70억9200만원(40건) 등 순이었다.
저축은행 중에는 예가람(87억7700만원, 3건)이 금융사고 규모가 가장 컸고, 다음으로 KB(77억8300만원, 1건), 푸른상호(69억5300만원, 3건) 등의 순이었다.
또한 코로나19 시기이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2019~2021년,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저축은행 5곳은 서류 조작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부당하게 취급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5곳의 저축은행의 부당 취급 규모는 총 1조2000억원이며, 잔액 기준으로는 9조원에 달했다.
아울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비은행권 중심의 부실 대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김수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부동산 PF의 양적·질적 리스크는 과거 금융위기 대비 낮은 수준”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저축은행 위기는 부실을 적기에 해소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날 수록 PF 사업성이 악화될 뿐 아니라 금융회사가 취할 수 있는 대처방안도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취약 ‘실손보험’ 작년 청구액 5천억 넘어
현재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지만, 올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절반만큼의 보험액이 청구되면서 병원의 과잉진료가 도덕적 해이에 대한 상황을 뒷받침해준다.
국회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미애 의원이 생명보험협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 16곳에 대한 전체 상급종합병원(45곳)의 보험 청구액은 5233억4000만원이다.
전체 상급종합병원의 실손보험 청구액은 2019년(42곳) 3233억3000만원이었으나 5년 사이 61.9%가 급증해 5000억원 돌파했다. 실손보험 청구 건수는 2019년 172만9758건에서 지난해 236만3769건으로 36.7% 늘었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도 불리는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4000만명에 달한다. 건강보험의 보완재 역할을 하지만 도덕적 해이에 취약하며 대표적인 만성 적자 상품으로도 꼽힌다.
실제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1조9738억원으로 2조원에 육박했다. 전년(1조5301억원) 대비 적자 규모가 4437억원 늘었다.
김 의원은 “실손보험으로 이른바 의료 쇼핑이 벌어졌고, 어차피 보험사가 낼 돈이니까 비싼 치료를 끼워 넣는 병원이 흔해지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에서 과잉진료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손해율 또한 상승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 유관기관 등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회의체를 구성해 현재 추진 중이다.
앞서 지난 8월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향후 의료인력 수급 추계방안을 포함한 1차 의료개혁안을 발표했다. 올 12월과 내년에는 2·3차 개혁안이 발표되며 여기에는 비급여 관리 강화, 실손보험 구조개혁 등의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