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탄소배출권 시장 성장 기대감에 설레고 있다. 탄소산업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부터는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 창구를 통해 배출권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중개 수수료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탄소배출권 부수 업무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하나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IBK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SK증권,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증권 등 10개사다.
그간 증권사들은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금융사 중 유일하게 배출권거래중개회사 지위를 유지해 왔다. 다만 중개회사 요건 등 규정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중개행위보다 자기자본을 통한 배출권 매매만 가능했다. 지난 9월 환경부의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관련 규정과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에 배출권거래중개회사인 증권사가 위탁거래까지 가능해졌다. 특히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탄소 배출권 시장은 탄소 감축 의무가 있는 규제 대상 기업이 참여하는 비자발적 탄소 배출권 시장과 달리 정부 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증권사들은 위탁매매 거래시스템 개발과 상품 출시는 물론 해외 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월 증권사 중 처음 사업개발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획득했다. 재단법인 ‘굿네이버스 글로벌 임팩트’와 온실가스 감축사업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진행한 자발적 탄소배출권 사업을 통해 10만톤 규모의 배출권을 갖게 되면서 향후 10년에 걸쳐 190만톤 배출권을 확보해 자발적 탄소 시장에 공급한다.
하나증권은 2021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탄소 배출권 시장 조성자로 선정됐다. 싱가포르 탄소 배출권 거래소(CIX)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국가에서 ESG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부터 운용사업부 아래 탄소 금융부를 설치해 장내 탄소 배출권 시장 조성자 및 단독 위탁 매매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최초 바이오차(바이오매스+숯) 기반 탄소 배출권 사업에 투자했으며, 2030년까지 총 16만7000톤CO2에 해당하는 탄소 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8월에는 아시아 증권사 최초로 UN 산하 녹색기후기금(GCF) 기후 테크펀드 운용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미래에셋증권은 업계 최초로 기후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탄소 배출량 가격 상승과 관련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재무적 영향도를 공시했다. SK증권은 탄소배출권 시장 리서치 업체와 MOU를 맺었으며, IBK투자증권은 유럽에서 ‘해운업 특화 탄소금융 서비스’를 추진하는 등 시장 선점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붐에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데이터센터를 늘리고 있어 향후 몇 년 내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빅테크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기 위해 수억달러를 들여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탄소배출량이 늘어남에 따라 증권가에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