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오징어게임에서 처음 봤어요!”
최근 서울 중구의 한 한식점. 일본 시즈오카에서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다는 이케다 씨는 불고기에 곁들인 소주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로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그는 꽤 정확한 한글 발음으로 “일본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소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 소주가 해외에서 뜨고 있다. 불과 4년 전, 농림축산식품부가 세계 주요 도시의 8000명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때만 해도 ‘비선호 한식’ 1위 불명예를 뒤집어쓴 ‘한국식 술’ 소주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1억141만달러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1억달러 고지를 탈환했다.
올해도 상승세는 이어진다. 관세청은 7월까지 소주 수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4% 오른 5774만달러라고 발표했고, 바로 지난달에는 잠정치 1181만달러를 기록하며 월간 수출액 1000만달러 최초 돌파라는 이정표를 세웠다고 전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소주가 ‘쓴맛’을 보고 있었다. 국세청이 알린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2019년 91만5596㎘에서 지난해 84만4250㎘로 줄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지난해 소주 소매시장 매출(2조3515억원) 역시 전년 대비 5.4%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 위스키, 하이볼 등이 국내에서 자리 잡으며 기존 시장을 양분하던 소주와 맥주는 주춤하고 있다”며 “국내 인구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이라 내수시장에서 소주는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대신 해외에서 소주가 ‘힙한 K-알코올’로 재조명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류 콘텐츠, 특히 드라마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나의 아저씨’, ‘오징어게임’ 등 여러 작품 속 등장 인물이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외국인들의 눈에 ‘초록색 병의 투명한 술’이 각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3대 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처 그룹이 발간하는 ‘사이언티픽 리포트’가 7월 공개한 자료에서 미국·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의 18~45세 현지인 2018명의 92%가 한국 드라마와 K-팝 덕분에 한국 제품과 브랜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응답했다. 또 같은 지면에서 이스라엘·인도네시아 공동 연구팀 조사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적 있는 성인 414명의 36%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소주를 사서 마신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식진흥원이 지난 5월 공개한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도 소주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난해 해외 16개국 18개 도시의 현지인 9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41.1%가 소주를 안다고 답해 한국 술 중 인지도 1위에 올랐다. 또 한국 술을 안다고 말한 4839명 중 최근 2년 간 마셔본 적 있는 한국 술을 묻는 질문에서도 소주가 가장 높은 지분(47.9%)을 차지했다.
이처럼 해외 진출 속도를 높이는 ‘K-소주’가 최근 날개까지 달았다. K-팝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유명 팝가수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곡 ‘APT’가 지난달 18일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는 가운데, 로제가 글로벌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보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소개하고 직접 제조해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APT’가 2주째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수성하는 사이 해당 영상도 지난달 20일 업로드 이후 조회 수가 꾸준히 올라 6일 현재 460만을 넘겼다.
소주의 재발견에 국내 업체들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로제의 소맥 영상에 등장한 ‘참이슬’을 유통하는 하이트진로는 지난 6월 2030년까지 해외 소주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해외 소주 매출 1891억원을 올린 하이트진로는 우선 공략 대상 국가를 8개국에서 17개국으로 늘리는 동시에 베트남에 첫 해외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의 국제식품박람회 ‘시알 파리’에서 혁신상 셀렉션에 선정된 소주 ‘새로’를 생산하는 롯데칠성음료는 미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지난해 12월 현지 주류회사 E&J 갤로와 손잡고 주류 전문 판매점 약 1만 곳에 ‘처음처럼’과 ‘순하리’ 등을 입점시켰으며 코스트코 같은 현지 대형 유통 채널에도 입점을 늘려가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