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추진했던 신기술사업자 투자에 대한 결실이 나오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신기술금융조합은 최근 운용자산(AUM) 5000억원을 돌파하면서 투자 확대에 속도가 붙고 있다. 다른 증권사들도 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모으고 투자처를 찾는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통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의 신기술금융조합은 2018년 2월 결성 후 6년여 만에 최근 AUM 5507억원을 달성했다. 누적 AUM은 740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금융 시장 불확실성 증가로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총 2236억원 규모 8개의 조합을 결성했다.
신기술금융조합은 투자자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주로 중소·벤처기업의 비상장증권 등 신기술사업자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기술금융조합 설립을 위해서는 신기술사업금융업 라이선스 등록이 필요하다. 신기술사업금융업등록 시 신기술 기반의 중소∙벤처기업 투자 및 융자를 벤처캐피탈 자격으로 할 수 있다.
메리츠증권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자금의 회수와 재투자까지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 2017년 신기술금융팀을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메리츠증권이 정책 자금의 출자 없이 민간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출자자를 모집해 운용자산 5000억원을 돌파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이 결성한 조합의 LP(유한책임출자자)는 신탁사를 포함한 금융기관(71%), 상장기업 및 일반법인(15%), 개인전문투자자(15%) 등 민간 투자사들로만 구성돼 있다.
운용자산의 성장세와 더불어 탁월한 운용 성적도 내고 있다. 현재까지 메리츠증권이 결성한 조합은 블라인드 조합과 프로젝트 조합 등 총 38개다.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반도체 등 총 64개 기업에 총 6548억원을 투자했고 이 중 12개 조합을 청산하여 평균 IRR(내부수익률) 12%를 달성했다.
대표적으로 투자한 회사는 퓨리오사AI, 알멕 등이다. 메리츠증권은 퓨리오사AI의 NPU(신경망 처리장치) 설계 능력이 향후 반도체 시장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것으로 판단해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 2020년 메리츠증권은 알루미늄 소재 제조사 알멕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알멕은 전기차(EV) 배터리 모듈 케이스에 집중해 글로벌 고객사들을 확보하며 지난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상장 후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exit)를 통해 내부수익률 42%를 기록했다.
메리츠증권은 향후에도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신기술 투자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대내외 불안한 경제환경으로 인해 투자 심리가 많이 위축되고 있지만 중소∙벤처기업 성장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 검토를 하고 있다”며 “다양한 투자기관과 협업해 고객에게도 우량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증권사들은 블라인드 펀드 결성을 통한 방식으로 신기술사업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12월 IBK금융그룹과 연합자산관리(유암코·UAMCO)가 함께 1500억원 규모의 ‘IBK금융그룹-유암코 중기도약펀드’를 조성했다. IBK금융그룹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발휘해 성사된 이번 펀드는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 블라인드 펀드다. IBK기업은행이 250억원, IBK캐피탈이 150억원을 출자한다. 중기특화증권사로서 차별화된 투자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가진 IBK투자증권과 국내 구조조정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보유한 연합자산관리가 업무집행사원(GP)으로 참여해 공동 운용한다.
지난해 6월 신한투자증권 신기술금융부는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을 LP 투자자로 참여한 블라인드 펀드(신기술사업투자조합)를 결성했다. 펀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상장사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으로, 신한투자증권이 전체 430억원 중 200억원을 출자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