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22대 국회, ‘도현이법’ 외면 말아야

 지난 4월19일 강릉의 한 도로에서 차량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밝힐 ‘재연시험’이 국내 최초로 열려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이 시험을 준비한 이는 제조사나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인 이상훈씨였다. 아들인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은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차량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났다며 도현 군이 세상을 떠난 책임을 제조사에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 건수는 총 791건이다. 연간 50회 이상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재판부와 제조사가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국내에서 급발진이 인정되기 쉽지 않은 이유는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사고원인을 직접 밝혀야해서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급발진 차량의 부품 등 결함과 관련해 배상받기 위해선 제조물의 결함 및 피해를 소비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 전문지식 부족 등으로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피해자가 제조사에 차량 결함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해도 보안상의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억울하게 급발진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된 배상을 받기 힘든 현실이다. 

 

 이에 사고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 등 소비자에게 두는 현행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1대 국회에선 제조물책임법 일부 개정안은 차량 결함 발생시 그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가 갖도록 하는 일명 ‘도현이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해 현재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고, 결국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지금도 급발진 의심사고 피해자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줄 알면서도 피해 입증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법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업 눈치보느라, 정쟁만 일삼느라 민생법안인 도현이법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선 안된다. 도현이법 제정은 22대 국회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할 숙제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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