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R(리세션·경기침체)의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덮으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9월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국내 소비자물가도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지만, 한은으로선 부동산 상승세, 가계부채 증가세 등을 우려해 섣불리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한은은 오는 22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연다. 한은 금통위는 12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에서 동결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 컷’을 단행할 거란 전망이 절대적이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18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0.50%포인트 낮출 확률은 71.5%로 제시됐다. 0.25%포인트 인하 확률은 28.5%다. 미국 고용지표 둔화 등 경기침체 우려에 대응해 연준이 ‘피봇(통화정책 전환)’에 나설 거란 기대가 반영됐다.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글로벌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한은 금통위도 이러한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어느 정도 사그라진 점은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의 부담을 더는 요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은 4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며, 한은의 관리 목표인 2%대에 안착하는 흐름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한은을 압박하고 나섰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자신의 SNS에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은 이미 너무 늦었는데, 9월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그에 앞서 이달 22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하고, 10월 초에 연이어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빚 증가세는 금리 인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은 물가상승률의 안정 추세에 많은 진전이 있었던 만큼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할 준비를 하는 그런 상황이 조성됐다”면서도 “다만 언제 방향 전환을 할지는 외환시장 또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앞에서 달려오는 위험 요인이 많아서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가계 빚은 주담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올해 상반기 중 은행권 주담대는 26조6000원가량 증가했다. 전년 동기(16조원) 대비 10조원 많은 규모다. 한은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향후 기준금리가 인하될 경우 기대 선반영에 따른 기존의 대출 증가에 더해 추가로 가계대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도 여전하다. 한은이 내놓은 ‘7월 소비심리지수(CCSI)’를 보면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15로, 2021년 11월(116)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까지 19주 연속 오름세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