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높아지는 탄소 국경에 미리 대비해야

 

 전 세계의 관심이 전쟁에 쏠리다 보니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후퇴한 듯싶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던 ESG란 용어는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미국의 탄소중립에 관한 법제화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는 모양새다. EU는 지난해 10월1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보고 의무를 시행했다.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CBAM은 탄소배출에 관한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로 탄소배출이 이전되는 사례를 막으려는 제도다.

 

 다시 말해 EU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수입품 간의 탄소배출비용 격차를 줄이기 위해 수출하는 쪽에 비용을 부담케해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적용되는 대상은 철강 및 철강제품,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수소 등 6개 품목이다. CBAM은 2025년까지 전환 기간(transitional period)을 두고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라서 EU에 수출하는 기업의 비용 증가는 불가피하다.

 

 미국은 2025년 ‘청정경쟁법(CCA)’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판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정유, 석유화학, 철강, 유리, 제지 등 에너지 집약 산업군에 속하는 12개 수입품목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1t당 55달러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상 품목이 전기전자제품, 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확대되고, 금액도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30년에는 9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기업의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그렇기에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협력은 당연하다. 국회와 정부의 입법, 정책, 제도 등의 도입과 더불어 민간 부문에서의 대응 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기관은 여신 및 투자의사 결정을 위한 프로세스에 탄소중립 원칙을 반영함으로써 이와 연계한 자금 조성이나 중개 활동의 기반을 갖춰 기업의 ESG 경영을 촉진하고 탄소중립에 관해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선진국의 탄소국경 장벽을 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의 규모를 자체적으로 추산해 산업분석과 기업심사에 반영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정립함으로써 탄소중립에 관한 기준에 따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업들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온실가스 대응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금 당장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량 측정, RE100 대응, ESG 경영을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했다. 수출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듯 탄소 국경을 넘기 위해서도 상호보완적인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는 EU가 주창하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망실사지침(CSDDD) 대응과도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CBAM 및 탄소중립 대응 현황 조사’를 했었다. 그 결과 응답 기업 78.3%가 CBAM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또한, 직접 영향권인 EU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도 54.9%가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실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더 나아가 ESG 경영을 점진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정부와 대기업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에 비용을 부담케 하려는 선진국의 모습은 전형적인 사다리 치우기라 하겠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지구적 문제를 자국 우선주의에 기초한 주도권 다툼으로 이끄는 작금의 행태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전 세계의 공통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우식 전 NH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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