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동맹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자 문제로 불법체류자로 체포 및 구금당하고 인권 유린에 가까운 학대를 받았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들끓고 있다. 심지어 관광비자로 입국한 미국인 영어회화 교사들을 전수조사해서 체포하고 추방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어찌보면 과거 광우병 사태 이후 이토록 우리 국민들이 미국에 강한 반감을 갖게 한 사건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러 간 우리 근로자들을 현지 이민세관단속국(ICE)뿐만 아니라 미드에서나 봤던 연방수사국(FBI)과 마약단속국(DEA) 요원들까지 들이닥쳐 잡아가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ICE는 합법적이지 않은 비자로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합법적인 비자 소유자마저 체포 및 구금했다는 사실과 함께 아무리 불법체류자들이라 할 지라도 인간 이하의 대접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다.
7일간의 구금 끝에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우리 근로자 330명(한국인 316명∙외국인 14명)은 무사히 풀려나 지난 12일 전세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미국인들의 좌절감과 무력감을 외국인 이민자와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전가시키는 전략을 펼쳐왔다. 진보든 보수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미국인들은 현재 불법 체류자나 외국인 노동자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조지아 구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조지아 구금사태는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위축시키고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인식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도 득이 될 게 없다.
게임이론 전략 중 ‘팃포탯(Tit-for-Tat)’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상대가 잘해주면 우리도 잘해주고 상대가 우리를 때리면 우리 역시 상대방을 때리는 걸로 맞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런 식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균형있게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을 ‘팃포탯’이라고 부르며 가장 성공적인 전략으로 꼽힌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간은 물론, 조직과 조직, 나라와 나라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때리는 데 맞기만 하면 결국 불균형이 심화된다.
미국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 중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제조업 역량을 가진 자국의 거의 유일한 동맹국이 대한민국이다. 배터리 공장은 물론, 반도체 공장까지 미국에 새로운 제조업 역량을 갖출 수 있는 마중물을 마련해줄 대한민국 기업과 국민이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 정부가 대응할 차례다. 국민을 생각하고 장기적인 우리나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장 대미 투자부터 속도 조절에 들어가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또 정부는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국내에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어학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미국인들에 대한 단속을 실시해야 한다. 대미 투자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미국 정부에 맞서 일본과 유럽, 그리고 캐나다와 멕시코 등 다른 동맹국들과 연대하는 방안도 있다.
당연히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미국에 우리의 카드를 보여줘야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팃포탯 전략의 요체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마냥 불리한 상황도 아니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가 최근 연구센터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이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한국 정부가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3500억 달러(약 488조원)를 내는 대신 그 돈으로 한국의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다”고 적었다. 무엇보다 베이커는 미국이 15%로 낮춘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증가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125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면서 “한국이 왜 125억 달러어치의 수출을 지키고자 미국에 3500억달러를 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리한 카드는 우리가 이미 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준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