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때 세워진 미국의 무역 장벽에 좌절한 국내 철강업계가 다시 찾아온 트럼프 시대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6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를 누르고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 2017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부로 5년 만에 백악관으로 복귀하게 됐다.
초강대국 미국이 펼치는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 한국이다 보니, 국내 대표 산업계에서는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결국엔 ‘트럼프 2기’로 결론이 났고, ‘트럼프 1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철강업계는 상황이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출량은 연평균 383만t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국 산업을 우선하는 트럼프가 꺼내든 ‘무역확장법 232조’로 인해 2018년부터 수출량이 이전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해외 철강에 25% 보편 관세’라는 직격탄은 피했지만 ‘물량할당제도(절대쿼터제)’에 걸려 무관세 수출의 상한선(연 263만t)이 생긴 것이다. 이때 올려진 장벽이 46대 미국 대통령 존 바이든 시대에도 이어졌고 그렇게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제 트럼프 2기를 맞이해야 하는 국내 철강업계에서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현상유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주요 산업협회와 대선 결과에 따른 대응을 준비했는데 철강의 경우 현재 수출 쿼터 유지를 우선순위로 두고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국내 업계의 미국 수출 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원래부터도 쿼터제의 영향 아래 있지 않느냐”라며 “트럼프가 한국을 상대로만 장벽을 더 높게 세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조촐한 기대와 달리 트럼프 1기 때보다 규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비관적 시선도 있다. 쿼터 축소로 현행 263만t 상한선이 더 내려가거나, 아예 관세 대상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무역통상 관계자는 “한국 철강이 현재 쿼터제 아래서도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이 트럼프의 신경을 건들 수 있다”고 짚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쿼터제 축소에 더해 추가 관세가 부여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 유세 중 중국산 수입품에 60%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 상품에도 10~20% 보편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아울러 트럼프의 강화된 대중국 제재가 한국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출을 막는 과정에서 한국 철강을 향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 또 미국길이 막힌 중국 철강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 시장에 ‘덤핑’ 공세를 펼쳐 한국산 철강의 자리를 뺏을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철강업체 관계자는 “당장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가 내년 초 집권을 시작하고 어떤 정책을 밀고 나가는지가 드러나야 그에 대한 대응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수년째 대미 철강 수출 성장의 발이 묶인 국내 철강업계는 인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도에 진출한 주요 철강 기업으로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KG스틸이 있다. 특히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추가적으로 현지 거점을 늘리며 인도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