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모 씨(39)는 출산을 두 달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육아용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아웃렛에서 200만원이 넘는 유모차를 보고선 깜짝 놀랐다. 이씨의 지인 중 일부는 “첫 아이인 만큼 백화점에서 명품 육아용품을 사라”고 제안했지만, 이씨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육아용품을 구매할 생각이다. 그는 “생활물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짧은 기간 사용할 육아용품에 큰 돈을 쓰기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 광주시에 거주하는 최모 씨(43)는 서울에서 첫 번째 창업에 실패한 후 모바일 게임을 테마로 5년 전 두 번째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창업 초기엔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 선정 문턱까지 가며 장래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최근엔 사무실 임차료,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다. 소비위축으로 유료 결제 유저 수마저 줄며 매출액도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자 최씨는 2년 전부터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그는 “배달 알바를 통해 번 돈으로 간신히 임직원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기조가 소비자들의 생활 양식을 바꿔놓고 있다. 상품 구입 비용을 줄이려는 이들이 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수는 꾸준히 증가세다. 부수입을 벌고자 투잡, 스리잡을 택하는 이들도 늘었다. 소비자 체감물가가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절반 이상은 지난해보다 소비지출을 줄일 거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고물가·불황에 쑥쑥 크는 중고거래 플랫폼
최근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흐름이 확산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은 활황이다.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 1위 당근을 운영하는 당근마켓은 2023년 17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창사 8년만에 첫 흑자를 냈다. 연간 매출은 1276억원까지 늘었다. 2023년 말 기준 누적 가입자수는 3600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900만까지 증가했다. 번개장터 누적 가입자수 역시 2200만명까지 늘었다.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는 지난해 최고 매출을 경신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2023년 매출 3조4604억원, 영업이익 2617억원을 기록하며 ‘3조 클럽’에 입성했는데, 지난해엔 매출액이 4조원을 넘었을 거란 얘기가 나온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과 실용적 소비 행태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편의점이 선보인 구독 서비스도 실속파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편의점 씨유(CU)는 ‘CU 구독’을 통해 자체 커머스 앱 ‘포켓CU’에서 도시락, 샐러드, 즉석원두커피 등 20여 종의 상품 카테고리 중 구독을 원하는 품목의 월 구독료를 결제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정해진 횟수만큼 정기 할인을 제공한다. 월구독료는 1000~4000원으로 최대 30%의 할인율을 내세우고 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3~5회만 이용해도 구독료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 고물가 시대에 짠테크 소비를 돕는 서비스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 절반 이상 “소비 줄일 것”…고물가, 소득 불평등 더 키워
국민의 절반 이상은 올해 소비 규모를 줄일 거라는 어두운 예측도 나온다.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지출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는 “2025년 소비지출을 지난해 대비 줄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올해 가계 소비지출은 올해에 비해 평균 1.6% 줄어들 거라는 게 한경협의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연속 1%대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채소류는 전년 동월 대비 10.4%나 뛰었다. 서비스 물가 중 개인서비스 물가는 2.9%나 상승했다.
고물가는 계층 간 불평등도 키운다. 통계청이 실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3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가 식비로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42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가처분소득(90만2000원)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7.5%로 절반에 달했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가처분소득(807만1000원) 대비 식비 비중이 15.9%에 그치는 점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특히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소득 하위 1분위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3분기 외식 등 음식 서비스 물가는 8.7%나 치솟았다. 1992년 3분기(8.8%) 이후 30년 만에 가장 상승폭이 컸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