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발생 ‘디지털 낙인’에 폐업… 위기의 풀뿌리경제

동선 공개로 기피 장소 전락… 자영업자 손실 눈덩이
기록 삭제도 어려워… 방역당국 “상호명 공개 불가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확진자 발생 ‘낙인’으로 가게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을 중단한 점포. 세계일보DB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코로나 확진자 발생이 6개월 전 일인데 아직도 상호명을 인터넷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지난해 연말 확진자 동선과 겹쳤다는 이유로 기피 장소가 돼 버렸어요. 두 달째 손님이 뚝 끊겨 진지하게 폐업을 고민 중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확진자 발생 ‘낙인’이 찍혀 생업을 포기하거나,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확진자가 나온 지 수 개월 지났음에도 관련 뉴스나 정보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그대로 남아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헬스장, 사우나, 식당, 마트 등 전 업종에서 코로나로 인한 ‘디지털 낙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스포츠 및 사우나 시설을 운영하는 A씨는 “작년 9월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업장 문을 닫아 매달 8000만원 이상의 손해를 보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업체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아직도 코로나 확진자 발생 뉴스가 나와 매장을 재오픈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뜬 확진자 관련 기록을 삭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A 씨는 “언론사 등에 해당 뉴스를 삭제하거나, 실명으로 공개된 상호명을 바꿔달라고 요청해봤지만 대부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방역을 철저히 실시하고, 고가의 소독 장비까지 들여놨는데 허탈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로 인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상호명 자체를 바꾸는 상인들도 종종 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이유로 ‘별점 테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일부 네티즌들이 지도앱 식당 소개 첫 페이지에 ‘코로나 식당’, ‘코로나 무더기 확진’ 등의 댓글을 적고 별점 1점을 남겨 곤욕을 치렀다.

 

이태원의 경우 아예 상권 전체가 기피 지역으로 낙인 찍힌 케이스다. 작년 5월 이태원클럽발 집단감염 사태가 불거진 이후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7%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태원에서 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B씨는 “코로나가 이제 막 시작된 작년 초부터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왔지만 집단감염 사태로 모두 도루묵이 됐다”며 “한 번 대규모 확진자 발생 지역으로 찍힌 이상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매출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작년 10월부터 시행 중인 정부 지침에 따르면 방역 당국은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 및 이동수단을 공개해야 한다. 다만 해당 공간 내 모든 접촉자가 파악된 경우에는 상호명 등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 반대로 방문자 기록이 미흡해 연락처나 동선 등이 제대로 체크되지 않는 경우 상호명을 공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식당을 운영하는 C 씨는 “매장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연락처 등을 철저히 체크하지만 가게에 잠깐만 머무는 포장 손님들까지 100%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방문자 기록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경우 감염 확산을 신속하게 차단하기 위해 상호명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지역 보건소 관계자는 “확진자 동선의 경우 2주가 지나면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삭제하지만 개인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소상공인들은 체계적인 방역을 위해 동선을 공개하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상호명만큼은 ‘OO동, OO매장’ 등의 방법으로 대체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특정 상호명을 밝히지 않으면 방역 체계에 구멍이 생기고, 자칫 애꿎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확진자 발생시 동선과 상호명을 공개하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부가 구글,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의뢰해 관련 기록을 지우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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