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서울 성동구 행당시장의 저녁은 낮보다 활기차다. 시장 초입부터 노릇노릇 맛있는 냄새가 골목골목을 채운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주부보다 퇴근한 뒤 진한 닭칼국수, 왕십리 명물 곱창 등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직장인들이 더 눈에 띈다.
이곳은 오래 전의 시간과 현대가 공존해 가족끼리 오기도, 특유의 감성을 느끼러 데이트하기도 좋다. 퇴근 후 쌓인 피로를 풀러 가볍게 들르기에도 손색없다. ‘한국형 야시장’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행당시장을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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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쪽 관문… 일제강점기부터 시장 형성
행당시장은 오래 전부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지역 명소다. 왕십리역사가 들어서기 전에는 행당시장 골목이 왕십리의 중심지로 꼽혔다.
‘행당’이라는 이름은 갑오개혁(1894) 무렵부터 붙었다. 현재의 행당초등학교 동쪽산 일대 아기씨당(堂)이 위치한 곳에 옛부터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이같이 불리게 됐다.
특히 행당동 일대는 예부터 서울 동쪽의 관문으로 여겨졌다. 고지대가 적은 평지인 데다가, 교통의 요지로 자연스럽게 상인들이 모여들며 시장이 형성됐다. 일제강점기에는 북으로 가는 물자가 이곳을 통해야 했고, 6.25 전쟁 당시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휴전 이후부터 경공업이 발전하며 1968년 행당시장 상점가가 형성됐다. 이후 2015년 성동구로부터 행당시장 상점가 상인회로 등록, 현재 왕십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시장을 중심으로 주변 주택가가 조성된 생활 밀착형 시장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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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더 활기찬 시장… 노포+뉴트로 감성 ‘눈길’
이전에는 떡집·방앗간·기름집 등이 많았다면, IMF를 기점으로 자영업자 창업이 늘며 요식업이 시장 내 주요 업종으로 떠올랐다. 현재 100여개 점포가 모여 있다. 오랜 역사 덕분에 30년간 장사에 나서거나, 2대에 걸쳐 가업으로 물려받은 곳도 많다.
이렇다보니 행당시장은 ‘시장’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먹자골목’과 유사한 분위기다. 상인회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손님은 하루에 약 7000명. 특히 5시 이후부터 활기를 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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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매력은 숨겨진 젊음을 찾는 데 있다. 노포들만 모여 있는 시장같지만, ‘뉴트로’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특히 소비의 ‘큰 손’으로 떠오른 MZ세대들은 북적이는 도심과 정감가는 골목이 어우러진 분위기를 선호한다.
행당시장은 이같은 감성을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의 시간을 담은 소박한 공간에 젊은 자영업자가 하나둘 모여들며 이곳만의 힙한 감성이 만들어졌다. 2대가 걸쳐 운영하는 오랜 노포와 힙한 식당·술집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취향껏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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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넝쿨마당 능이백숙’에서 백숙요리를 먹고, ‘수현횟집’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이후 옥이네·행당집 등 술집에서는 힙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삼맛종합분식·스마일꽈배기 등 추억의 간식거리도 만날 수 있다.
◆팬데믹 사태 현명하게 이겨내… HMR·배달 강화
행당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슬기롭게 대처한 사례로도 꼽힌다. 이들은 2020년 팬데믹 초기, 왁자지껄한 현장이 사라졌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탔다. 상인회에서는 회원사들에게 HMR 사업과 배달에 나서볼 것을 적극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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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행당시장 상인회장은 꼭 현장에서만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도 코로나초기에는 타격을 많이 받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 노선을 달리했다”며 “행당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집이나 명물을 고객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HMR을 도입하고 배달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상점가에서 배달에 나서는 집은 거의 없었다”며 “실제로도 처음에는 다들 ‘무슨 배달’ 했지만 지금은 적극 나서는 상점이 크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수제비 먹는 닭갈비집’, ‘호야네족발’ 등 맛집들이 배달에 나서며 지역 맛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HMR도 강세다. ‘곱순이네(곱창)’와 한우판매장은 HMR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대면 식품시장 58조원 역대급 실적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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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대비… 브랜딩·고객 소통 강화할 것
행당시장은 팬데믹 이후에도 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왕십리 대표시장으로 인식되도록 브랜드 구축에 나서는 중이다. 시장 내에서 쇼핑하는 경우 ‘행당시장’ 브랜드 로고를 입힌 비닐봉투 등을 사용한다. 올해는 SNS도 활성화하고, 오프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요소도 더한다는 취지다.
행당시장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무척 편한 위치에 있다. 이곳은 지하철 2·5호선, 분당선과 경의중앙선이 통과한다. 유료주차장이 있어 차를 갖고 오기에도 편하다. 성수대교를 넘어오면 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TIP. 같이 둘러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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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당시장에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도 넘친다. 가죽 공방, 도예, 극장 등 문화 충족도 가능하다. 문화재도 둘러볼 수 있다. 시장 인근에는 행당동 지명의 유래가 된 ‘아기씨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옛날 북쪽 나라 공주 다섯명이 나라가 망해 남쪽으로 피난을 와 왕십리에서 머물다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1700년경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자 마을이 번창해졌다고 한다. 이는 성동구 향토유적 제1호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3호다.
이곳에서는 사당의 주인인 아기씨와 다양한 무속신을 그린 구한말의 탱화 ‘무신도’ 총 22점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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