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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얼굴만한 크기의 스테이크를 썰고 조촐한 생일 축하 공연과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받아오기도 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가끔씩 가족과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기에 그만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1992년 개업해 1990년대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초격인 T.G.I. 프라이데이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난다.
20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T.G.I. 프라이데이는 총 14개 매장을 다음 달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닫는다. T.G.I. 프라이데이는 많은 이에게 추억이 깃든 곳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음식들로 한때 큰 인기를 끌면서 한 시간에 가까운 대기는 기본이었다. 특히 생일을 맞이한 손님을 위해 직원이 서툰 솜씨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과거 해당 업장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자신감 없던 시절 많은 사람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생일축하송을 부르던 게 지금 힘든 사회생활을 꿋꿋이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하기도 해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1990∼2000년대 잘나가던 코코스, 베니건스, 씨즐러, 마르쉐 등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이제 남은 건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빕스 정도다. 혹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사양길로 접어든 이유에 대해 건강식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고기 위주 식당들이 건재한 것만 봐도 주된 이유로 볼 수 없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이름 그대로 가족에게 초점을 맞춘 곳이다. 그 예로 어린이 메뉴와 쿠폰, 생일 이벤트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줄폐업은 한국의 인구절벽을 버티지 못해서라는 게 중론이다. 어린이 자체가 줄어들면서 비단 요식업뿐만 아니라 과거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어린이 고객 모시기’ 마케팅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만큼 인구절벽으로 인해 어린이가 미래 잠재고객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연령계층 구성비를 보면 2072년에는 유소년층 인구(0∼14세)가 6.6%에 머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해 유소년층 인구 10.2%에서 무려 3.6%포인트나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은 한국의 외식문화와 비교하기 좋은 케이스다. 해당 국가들은 패스트푸드로 잘 알려진 맥도날드, KFC의 분위기가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을 가보면 끼니를 혼밥으로 때우기 위한 손님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대다수며,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가족 단위가 즐기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어린이 방문객을 위해 풍선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술 더 떠 패밀리 레스토랑식의 식당에서 할아버지와 손주까지 포함한 3대가 식사하는 장면도 쉽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점 본연의 역할인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딱딱한 고정형 의자를 배치한 한국 매장과 너무도 생경한 모습이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아이 키우기 좋다고 정평이 난 곳들이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측되는 평균 출생아 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한국과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은 프랑스 1.62명, 한국 0.75명으로 2.2배 차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고민은 많다. 합계출산율이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으로는 주거비 절감 정책을 비롯해 일과 육아의 양립을 위한 무상보육, 어린이집 설립 등의 정책을 꾸준히 내세우고 있다.
출산율 회복을 위해 한국에서도 정부의 탄탄한 정책 뒷받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침체한 경제를 되살리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가족 우대’, ‘어린이 환영’이라는 문구가 되살아나길 기대해본다. 후대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뭐 하는 곳이었냐는 질문을 듣지 않길 바란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