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난 용(龍)’, ‘공부로 성공한 천재’, ‘중국 3대 인공지능(AI) 영웅’…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창업자 량원펑(40)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딥시크는 지난달 20일 압도적인 가성비·고성능의 AI 모델 ‘R1’을 공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빅테크 기업들이 더욱 경악한 것은 ‘개발 비용’이었다. 미국 경쟁사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 단돈 560만 달러(약 80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굳이 비싼 AI 반도체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은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 미국 유명 벤처 투자가 마크 앤드리센은 “딥시크 R1은 내가 본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혁신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혁신을 주도한 개발자들이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중국 국내파라는 점이다. 량원펑은 소위 ‘흙수저’ 출신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어린 시절부터 특히 수학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공부 천재’로 알려졌다.
그는 ‘공부’로 자기 인생은 물론, 국가적 영웅으로 우뚝 올라섰다. 결국 공부가 삶을 바꿨다. 그의 고향인 광둥성 마을에는 ‘고향의 자랑과 희망’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어릴 때부터 성적이 우수하고, 수학적 사고력이 뛰어났다”는 담임교사의 증언도 전해졌다.
량원펑과 함께 주목받는 인재는 딥시크의 핵심 개발자인 뤄푸리(30)다. 쓰촨성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뤄푸리는 전기기사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가족을 떠나지 말고 지역 대학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권유에도 “대도시로 가야 한다”며 베이징사범대 전자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샤오미 창업자 겸 CEO 레이쥔이 최근 연봉 20억원에 영입을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딥시크의 성공에는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AI 최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똘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다. 전국 각 대학에 2000개 이상의 AI 관련 학과를 만들고, 해외의 저명한 AI 교수를 영입해 AI 인재 육성에 힘썼다. 어쩌면 중국의 ‘AI 역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중국의 뛰어난 AI 기술에 전세계가 부러움을 넘어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인프라에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약 720조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5년간 미국 내에서만 데이터센터 구축에 1조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추정했다. AI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앞으로 더 치열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딥시크 충격은 곧바로, 금융 시장을 뒤흔들었다. AI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엔비디아가 큰 타격을 입었다.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달 27일 하루에만 17%나 급락해 시가총액 840조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구글, 메타 등 빅테크 주가도 힘없이 무너졌다.
국내 주식시장도 딥시크발 충격을 피해 가진 못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특히 엔비디아에 메모리 반도체를 납품하는 SK하이닉스에 불똥이 튀었다. 지난달 31일 SK하이닉스(-9.86%)는 설 연휴로 딥시크 쇼크를 뒤늦게 반영하면서 주가가 크게 빠졌다. 지난해 8월 5일(-9.87%) 이후 최대 하락률이다.
AI 패권시대,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마비 상태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져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 폐지, AI 추경 편성, 반도체특별법 통과 등이 시급한 상황이다.
인재 부족도 큰 문젯거리다. 전 세계 AI 분야 연구자 수 약 128만명 중 국내 연구자는 약 2만1000명 수준이다. 중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게다가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매년 심화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유능한 이공계 인재를 키워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이 학비 부담 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장학금·연구비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기피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비전의 부재’라고 봤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하려면 ‘개천’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가 이제 변할 때다.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