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이 밝았다. 새해에 거는 기대보다는 가닥가닥 풀어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된 트럼프 2.0 시대, 침체 늪에 빠진 중국 경제, 내수 부진, 정치적 혼란 등 대내외 복합위기로 부정적인 전망이 만연해 있다. 무엇보다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도 우리는 봉착해 있다.
한편, 미국, 중국, 유럽을 중심으로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서 혁신과 보호주의를 강조한 산업 정책으로 귀환하고 있다.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한 산업 정책을 한 국가가 시행하면 다른 국가들 역시 유사한 산업 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CRMA)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자유무역주의의 훼손뿐만 아니라 국가 간 치열한 무역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곧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경기 위축에 따른 환율의 변동성 확대, 무역과 기술 재편 등의 리스크는 가시화되고, 산업 및 통상 정책과 규제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가늠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의 위험이 일상화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경제나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혼자 답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변동성이 크고(Volatility), 불확실하고(Uncertainty), 복잡하고(Complexity), 애매모호한(Ambiguity) 시대이다. ‘뷰카(VUCA)’라는 지금의 시대는 기존의 지식이나 상식, 경험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리더들에게 뷰카 시대에 맞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잘나가는 기업일지라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격변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재 사업모델과 전략을 지정학적 변화와 기술 변화 방향 등에 맞추어 반드시 재정비하고, 이에 맞추어 변화된 조직 및 사업 프로세스, 인적 자원 및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 시대에서 생존하기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센스메이킹(Sensemarking) 이론을 주장한 칼 웨익(Karl E. Weick) 미시간대학교 석좌교수는 대규모 화재와 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을 연구하면 급변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라며, 과거의 상황 그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말고, 현재 벌어진 상황으로부터 얻어지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센스메이킹 역량이 바로 생존 도구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소개된 후쿠시마 제2원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센스메이킹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대부분 제1원전 사고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제1원전에서 10㎞ 떨어진 곳에 살아남은 제2원전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마쓰다 소장은 쓰나미가 덮친 후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경험으로 섣불리 상황을 진단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여진의 빈도와 규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진의 강도와 빈도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정했고, 이를 침착하게 모든 직원에게 공유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업의 우선순위를 수정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 치명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리더십은 급변하는 상황에서 조직이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사례에서 보듯이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끊임없이 현재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이 바로 센스메이킹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서과외지(西瓜外舐)’ 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서과(西瓜)란 수박을 일컫고, 외지(外舐)는 겉핥기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수박 속의 오묘한 맛을 모른다는 뜻이다. 현재 상황을 서과외지식으로 대처할수록 불확실성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언제나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유념해야 한다. 뭐가 뭔지 잘 모를 때는 단기적인 또는 하나하나의 개별 대응보다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큰 그림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장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여야 한다. 더욱이,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필요할 때는 상황에 맞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애자일한 일의 방식과 원활한 소통 능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불확실한 상황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눈앞의 문제만 사로잡혀 장기적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시각을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