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오후 11시 무렵, 모두를 혼란 속에 빠뜨린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정치적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비상계엄 청구서 규모는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로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은 것은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야간거래에서 1442.0원으로 급등했다. 당시 1400원만 넘어가도 금융당국이 경계심을 보였으나 비상계엄으로 순식간에 심리적 저항선을 뚫었다. 이후 고환율 흐름을 이어가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메시지로 인해 1400원 후반대까지 뛰었다.
한국은행의 국민연금 환 헤지 물량, 시장 안정화 조치 등으로 다소 안정감을 찾았으나 여전히 고환율 흐름이다. 이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변화가 환율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환율 수준은 우리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에서는 30원 정도가 정치적인 영향으로 올랐다고 본다.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수출입물가지수가 오름세를 보이는 등 물가 상방 압력이 커졌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직장인들끼리의 주된 대화 내용 주제 중 ‘가격 상승’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경제 규모도 후퇴했다. 한은은 당초 계엄 여파에 따른 내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소비 심리 위축, 내수, 건설경기 등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0.1%에 그쳤다. 1.9%로 예상됐던 올해 경제성장률에도 타격이 생겨 1.6~1.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계엄 사태로 인해 6조원 이상이 증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치 혼란 장기화로 1%대 저성장 고착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본격적인 관세 부과, 미국 보호무역주의 등 정책이 시작됐다. 트럼프 2기 정부에 맞춰 통상정책에도 변화가 생겨야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후 컨트롤 타워 부재로 모든 것이 멈췄다. 빠르게 대응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치 프로세스에 연이어 문제가 생기면서 대외 신인도도 걱정거리다. 당초 비상계엄이 빠르게 해제되며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호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한덕수 총리의 탄핵,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등으로 다시 한 번 정치 프로세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기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부지방법원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면서 ‘대립은 있어도 폭력은 없다’는 한국의 호소도 무용지물이 됐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 헌법에 규정된 행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당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비상계엄으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는 크게 요동쳤다. 곳곳에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경제 심리는 물가 상승과 함께 더욱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고도의 통치 행위라 주장하는 사태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다. 비상계엄 청구서는 우리 경제 곳곳에 지금도 쌓이고 있다.
최정서 기자 adien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