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술 주권 시대, '혁신 전략' 고민해야

법무법인(유)지평 기업경영연구소 정민 수석연구위원

 글로벌 경제는 경제 논리가 아닌 안보가 우선시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등으로 탈세계화가 촉발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적으로 국가 안보 및 경제안보 차원에서 산업정책이 재부상하는 동시에 기술 주권이 강조됐다.

 

 또 우방국 중심의 블록경제에서 기술 헤게모니 중심의 블록경제가 형성되고 있다. 한 국가가 어떤 전략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 간 동맹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정학(Tech-Politics) 시대에 살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라의 명운을 걸고 기술 발전에 나섰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제정에 이어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 핵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이러한 법안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어떠한 파장이 미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리쇼어링, 니어쇼어링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대대적인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과거 정부의 통상 정책과 달리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프렌드쇼어링의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 이유는 통상이나 교역 이슈가 핵심이 아니라 안보와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중심에서 두고 외교, 공급망, 경제 안보 관점에서 국익을 고려한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쿼드, 칩4,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국가 간 협력·연합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술동맹·기술블록 중심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른 기술 선진국도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벌이는 형국이다. 지난 몇 년간 각국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 EU의 ‘유럽 반도체 법안’, 중국의 ‘14.5 디지털경제 발전규획’ 등 주요국에서 다양한 법안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에 선제 대응을 위해 실효적인 수단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산업정책이 재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기술주권의 개념이 단순히 국방, 공공 안보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 경제 및 산업의 안보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이 보인다.

 

 한국도 경제와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기술패권 경쟁 시대의 대응과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전략기술 육성과 보호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시행과 ‘12대 국가필수전략기술’ 선정 등 다양한 정책지원이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 산업정책은 과학기술정책과의 연계성 강화를 통해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성의 극대화가 필요하다. 점차 과학기술 분야의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전략·효율적 연구개발 투자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는 2021년 약 102조원으로 처음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또 국내 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4.96%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R&D 투자는 외형적 관점의 제반 환경은 충분히 갖췄고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에 걸맞는 R&D 투자 방향과 구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기술패권 경쟁에 대항해 민관협업 기반 임무지향형 중심의 R&D를 확대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응할 과학기술 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략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기술개발과 공급망 관리 등 경제·산업 안보와의 관련성을 고려해 투자 방향의 유연한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서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역량이 모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가 주장하는 ‘기업가형 국가’에 대해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시장실패의 경우에만 정부가 개입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민간에서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리스크가 큰 기술 개발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관 협력을 통해 대체불가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핵심산업과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다각적인 육성·보호 방안들을 구체화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민관 모두 머리를 맞대어 한국 현실에 맞는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유)지평 기업경영연구소 정민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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