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겠습니다.”
걸으면서 유튜브를 보고, 회의 자료도 체크할 수 있다. 모니터나 핸드폰도 필요 없다. 그런데 주변 사람과 눈빛을 마주치며 대화까지 가능하다. 이 모든 게 두 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안경 하나면 가능하다. 마치 상상 속 기술이 총동원되는 마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안경 하나로 세상의 흐름을 바꿀 준비를 끝마쳤다.
IT 분야 시장 조사 및 분석 기관인 가트너(Gartner)는 AR(증강현실) 글라스 등을 포함한 공간 컴퓨팅을 2024년 가장 주목할만한 ‘Impact’ 기술 30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AR 글라스 전문기업 레티널(LetinAR) 김재혁 대표가 만드는 곧 다가올 미래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만난 김재혁 대표는 AR 글라스 기술에 대해 “‘쓰는 TV’ 혹은 ‘쓰는 모니터’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듀얼 모니터를 둘 필요 없이 안경만 쓰고 있으면 모니터를 여러 개 띄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핸드폰을 들고 있을 필요 없이 그냥 안경만 쓰고 있으면 원하는 화면들이 내 눈앞에 자연스럽게 뜨는 것들을 볼 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bout 레티널? ‘AR 글라스의 선구자’
레티널은 AR 글라스의 선구자다. AR 글라스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혁신 기술력으로 중무장한 첨단 광학 전문기업이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에서 2년 연속으로 혁신상을 받았으며 광학 분야 최고 권위인 ‘SPIE PRISM AWARDS Finalist’에도 2회 선정되며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대표 기업인 네이버 D2SF(D2 Startup Factory), 카카오, 롯데벤처스 등으로부터 누적 336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이외에도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누적 206건 특허 출원 및 92건 특허 등록을 마친 상태다.
대표기술은 고해상도 저중량 기술의 집약체인 ‘핀 틸트(Pintilt)’ 광학계다. 기존 첨단 글라스들의 단점인 크고 무거우며, 많은 전류 소비에 대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프로젝터 렌즈 제작에 활용되는 플라스틱 사출 공법을 활용했던 것이 주효했다. 또 작은 폼팩터를 유지하면서 반사형 방식의 높은 성능을 동시에 실현하면서 증강현실을 더욱 극대할 수 있었다.
◆이미 시작된 미래
레티널은 지난 6월 최신 기술을 차용한 AR 글라스는 같은달 실리콘밸리에서 열렸던 가상현실(VR), 증강현실, 웨어러블 기술 분야의 세계 최대 규모 엑스포인 ‘AWE USA 2024’의 퀄컴 부스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최첨단 기술의 각축장인 CES와 AWE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엔 기술 소개에 초점을 뒀다면 지금은 레티널의 AR 글라스를 선택한 유수의 고객사들이 결과물을 전시하는 방식이 됐다.
김 대표는 “이제 ‘시장에 이런 식으로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라는 부분들을 조금 보여드릴 수 있던 시간이었다”며 “양산했던 회사 이외에도 우리가 딱 들으면 알 만한 유명한 그런 회사들이 우리 레티널 글라스를 통해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Who′s Next Display?(다음 디스플레이는 누구?)
이제 조만간 디스플레이계의 맏형격인 TV는 사라질 수도 있다. 개인 맞춤화 시대가 열리면서 보는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 PC의 보급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한 예다. 스마트폰이 PC와 TV를 역할을 빼앗아가면서 비중이 점차 줄고 있다.
김 대표는 디스플레이 시장의 전망에 대해 “이제 주류 시장이 확 나뉠 것”이라며 “개인용 TV와 온 가족이 같이 보는 TV가 다른데, 좀 더 개인화되는 시대다 보니 스마트폰보다는 AR 글라스를 통해서 보는 게 더 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 대표는 “실제로 디스플레이계가 급변할 것이라는 우려는 해당 업계에서 꾸준히 나왔던 가설”이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AR 글라스가 너무 빠르게 발전된다면 스마트폰을 급히 넘어설 수도 있다 보니 (업계의 속도조절로 인해) 대체재보다는 보완재 역할을 통해 초기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쉽지만은 않았던 9년간의 여정
AR 글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해당 작품에서는 스카우터라는 글라스 기기를 통해 상대방의 전투력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런 부분이 우리의 미래’라고 느꼈다”며 AR 글라스의 출발선을 되돌아봤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면서 꿈을 키웠고 공동창업자인 하정훈 CTO(기술이사)와 2016년 회사 설립에 이르렀다.
탄탄대로만 걸은 게 아니다. AR 글라스와 관련해 이렇다 할 선배 기업이 없었다. 김 대표는 “‘(소프트웨어 쪽을 할걸)하드웨어를 왜 해서’라고 느꼈던 시점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며 “업계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원천 기술로 시작해 시장은 물론 고객사도 발굴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투자 측면에서도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초반엔 투자사들을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젠 긴 터널을 끝이 보이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양산해서 팔 수 있어야 우리 회사가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그 시간이 거의 8년 가까이 걸린 셈”이라며 “그동안 고객사의 눈높이에 맞추고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류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달려온 레티널의 다음 스텝은 고민 중이다. 우선 대중화 그리고 보편화가 목표다. 김 대표는 “AR 글라스가 보편화되면 그다음 단계로 자세히 볼지, 넓게 볼지를 결정해야한다. 차후 고민해봐야하는 대목”이라고 진중히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5년 정도 목표를 향해 달리면 충분히 재밌는 기업,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적으로도 아주 재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