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실손보험 개혁 필요하나, 합의 있는 연착륙 이뤄져야

 

“왜 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가입한 실손을 정부 마음대로 바꾸려는지 어이가 없다. 법까지 개정하려는 것 자체에 큰 배신감이 든다.”

 

올 1월 실손보험과 비급여 항목 개선에 대한 뉴스가 나왔을 때 지인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실손 가입자들의 의견 없이 정하는 거냐’, ‘내가 받을 보장이 줄어드는 거 아니냐’ 등 여러 질문이 날아왔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비급여 보장 한도가 축소되는 형태로 실손보험 5세대를 개혁한다고 했다. 동시에 일부 비급여는 정부가 관리하도록 ‘관리급여’ 영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와 보험소비자의 반발과 원성을 사고 있다.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국민 70%에 해당하는 약 3600만명이 가입한 상태다. 실손보험을 개혁하고, 비급여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이유는 비급여의 과잉 진료, 실손 가입자 일부만 혜택 보는 구조, 필수의료 기피, 건강보험 효과 저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을 꼽았다.

 

보험소비자들이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1세대와 초기 2세대 가입자들의 실손보험에 대한 보상금을 주고 재매입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거론하면서다. 이들 실손보험은 약관에 재가입 주가기 없어 만기 되면 통상 100세까지 보장받고, 자기부담률도 0~20% 수준인데 이런 실손을 재매입하고, 만약 재매입의 효과가 없다면 법 개정을 통해 약관변경 조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실손보험은 적자 구조다. 한해에 2조원 가까운 적자를 보고 있는데, 실손보험금 지급 항목이 높은 일부 비급여로 보험금 누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보험사들 입장이다. 가입자 다수가 보험료를 내지만 소수만 보험금을 받는 구조도 지적되고 있다. 대형 4개 보험사의 경우, 상위 9%만 지급보험금의 80%를 받았고, 가입자 65%는 한 번도 보험금을 받지 않았다는 통계를 예로 들었다. 이들은 비중증 비급여 진료 항목 1위인 도수치료를 가장 많이 받았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적극 판매한 실손보험을 이제 와서 정부가 나서서 개혁을 도와준다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보험소비자들 입장이다. 실손 만기가 끝난, 고령으로 접어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다만, 비급여의 팽창, 필수의료 붕괴 등의 문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특히 필수의료에 대한 붕괴가 심각한 건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필수의료의 공백, 기피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는 전공의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의대생을 늘린다고 해도 소아과로 가지 않는다는 이국종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꼭 필요하나, 이번에 내놓은 방안은 미봉책에 불과해보인다.

 

우리나라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격이나 진료기준 등을 시장 자율결정에 맡기고 있어 의료기관별 가격 차이가 심해 이 또한 제대로 정리, 평가돼야 한다. 

 

정부의 실손 개혁, 비급여 개선을 의료계가 모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비급여의 관리 정책이 실효를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정책이 현재의 보장을 대폭 축소하는 것처럼 보이면 국민 누가 가입하고 전환하려 할지, 나아가 재매입이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명확하게 보이는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건 마땅한 일이긴 하나, 그 과정에서 모인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타협을 잘 이뤄내 내가 받을 보장이 안전하다는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애꿎은 소비자만 또 피해를 보는 건 아닌지 염려만 커지고 있다. 한동안 이런 불안감을 잠재우긴 쉽진 않아 보인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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