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투자자 울리는 '올빼미 공시' 꼼수…올해는 줄어들까?

김민지 경제부장

 

“올빼미 공시 자체가 불법이 아니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악용하는 것 같습니다.”

 

‘꼼수’란 바둑 용어가 있다. 바둑의 ‘얕은 속임수, 째째한 수단이나 방법’을 일컫는다. 바둑에서는 꼼수 말고도 상황에 따라 여러 수가 동원된다. 묘수, 자충수, 강수, 초강수, 정수 등이 사용된다. 그 중 꼼수는 최악의 수로 꼽힌다. 꼼수에 능한 자는 바둑에서도, 일상 속에서도 교활한 소인배나 사기꾼 취급을 받는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식의 꼼수가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올빼미 공시’가 이런 꼼수에 해당한다. 올빼미 공시는 기업들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공시를 주식시장 마감 후, 늦은 시간에 발표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의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기업들이 공시 의무는 지키면서,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투자자의 관심이 줄어드는 시점을 이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시들이 주로 ‘악재성’ 정보이다보니, 곧바로 주가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실질적인 피해는 물론, 배신감마저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올빼미 공시는 매년 반복 중이다. 최근 사례 중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이수페타시스’가 있다. 이수그룹의 반도체 기판 제조 계열사 이수페타시스는 지난해 11월 장이 종료된 오후 6시 40분 제이오 인수를 위해 5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유상증자는 지분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있어 주주들 입장에선 악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수페타시스의 주가는 유상증자를 발표한 다음 거래일 하루 만에 주가가 22.68% 급락했다. 이수페타시스의 올빼미 공시로 시장이 떠들썩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정규장 이후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일에 올빼미 공시가 쏟아진다. 설 연휴 전 마지막 매매일인 올해 1월 24일에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공시는 모두 494건으로 집계됐다. 코스피 상장사 공시는 20~22일 평균 150건 수준이었으나 23일 250건을 넘어섰고 24일에 306건으로 크게 늘었다. 코스닥 상장사 역시 90건 수준이었던 공시가 23일 156건, 24일 188건으로 급증했다.

 

24일 장 마감 후 코스피 상장사는 124건, 코스닥 상장사는 116건의 공시를 쏟아냈다. 공시 내용을 살펴보면, 부진한 실적, 임직원들의 횡령·배임 사실, 최대주주 변경 등과 같은 악재성 공시들이 다수 포함됐다. 

 

하지만 기업들의 꼼수를 막긴 쉽지 않다.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국내 최초 대체거래소(ATS)인 ‘넥스트레이드’가 지난 4일 운영을 시작하면서 기존 장 마감 후 이뤄졌던 올빼미 공시도 대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넥스트레이드는 주식 거래 시간 자체가 길어졌다. 하루 거래 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로 12시간에 달한다. 정규 거래시간 전·후로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과 애프터마켓(오후 3시 30분~8시)을 추가 운영한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 주요 공시나 뉴스로 인해 프리·애프터마켓에서 주가가 급변동할 경우, 매매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대체거래소 도입은 당연히 환영하고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올빼미 공시가 근절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새로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당국은 기업의 공시 책임성 강화를 위해 제재 문턱을 높이고, 기업이 책임감 있게 공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일부 공시 항목에 대해선 장중 공시하도록 하고, 시간대까지 명시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기업들도 투명하고 일관된 경영 행보를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영어 격언 중에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말이 있듯이, 정직은 너무나 당연한 덕목이다.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는 것은 머지 않아 결국 들통난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금융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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