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생 A 씨는 지난해 4월 중국 온라인 장터 플랫폼에서 무선 이어폰 한 쌍을 7741원에 구매했다. 기존 사용하던 10만원대 무선 이어폰을 분실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A 씨는 “솔직히 싼 맛에 샀다. 설사 일찍 고장이 나더라도 2~3개월만 써도 손해는 아니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중국 유명 가전업체의 한국법인 설립 소식에 4만원대 무선 이어폰의 오프라인 구매를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2. 회사원 B 씨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한국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기존 국내 시장의 전기차보다 최소 2000만원은 저렴하다는 정보에 귀가 솔깃했다. 유력 무역업체에서 근무하는 그는 “3년 전부터 이쪽 업계에서 일하면서 ‘중국산’ 제품에 관한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업무 출장으로 중국 상하이도 자주 방문한다는 B 씨는 “미래도시 같은 느낌이랄까? 과거 ‘중국’하면 떠오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달라지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더는 싸구려가 아니다. 예전처럼 저렴한 가격에 평균 이상 품질을 보여주는 데 소비자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국산 제품이 지켜왔던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가 배경이 된 가격 경쟁력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품질조차 좋아지면서 중국보다 한 단계 위라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부심이 흐릿해지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 규모는 1330억2600만 달러로, 중국이 22년 연속 수출시장 1위 지위를 지켰다. 다만 2022년부터 그 수치가 감소하는 추세인데, 이는 한중 교역 구조의 변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존 한국에서 수입한 중간재를 바탕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던 중국 산업계가 중간재를 자급하기 시작했다.
실제 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석유화학 중간원료(-12.3%), 광학기기부품(-36.1%), 자동차 부품(-7.3%), 실리콘웨이퍼(-27.9%) 등 중간재의 대중국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춰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첨단산업 부문에서 중국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한정해 수출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무역특화지수를 산출한 결과, 지난해 1~8월 기준 중국(27.8)이 한국(25.6)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만 해도 한국 29.9, 중국 11.8였던 수치가 2022년 뒤집히더니 3년째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
무역특화지수란 수출입 통계 등을 바탕으로 가격과 기술경쟁력 등을 종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각국 수출품의 매력도를 따지는 수치로, 세계 첨단산업 시장에서 중국산이 국산보다 더 인정을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제약∙바이오 부문에서도 중국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 국가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생물보안법을 통해 중국 바이오기술의 진출을 막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중국 제약∙바이오의 저력이 상당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연방기관∙기업과 중국 바이오 기업 간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올해 의회 통과가 유력하다.
이처럼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을 더한 중국산 제품이 첨단산업부터 제약업, 자동차, 조선업, 유통업까지 여러 방면에서 국내외 시장을 공습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에 국내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가격 경쟁력을 따라가기 어렵다면 결국엔 중국산보다 더 뛰어난 품질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품질 향상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 및 정부 차원의 지원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