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을 고려하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실물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가신용등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상계엄 후 빠르게 해제가 되면서 당초 국가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번 계엄 사태는 정치적인 이유로 일어났다. 경제적인 것과는 분리해서 볼 수 있다.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과 정치적인 이유와는 분리가 됐다. 신인도도 크게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부정적인 경고를 일제히 내놨다. 피치(Fitch)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0%로 낮추며 “계엄 선포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은 국가 신뢰도에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무디스(Moody’s)도 “정치적 긴장이 고조돼 조업 중단 등 경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계엄 사태가) 실질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용평가 시 정치적 안정성을 중요한 평가 요인 중 하나로 꼽기 때문에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최상’ 수준이다. 무디스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세 번째로 높은 단계인 Aa2로 평가하고 있다. S&P도 2016년 8월 AA-에서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뒤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피치는 2012년 9월 A+에서 AA-로 상향 조정한 후 현재까지 같은 등급을 매겼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겪고도 흔들림이 없었던 국가신용등급이 이번 계엄 사태 여파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을 받는다. 국내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국가신용등급이 안정적일수록 낮은 비용으로 외화를 빌릴 수 있는데,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외화 조달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정부는 물론, 각 기업의 재정적 부담도 커지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며 외화 자본 유출이 가속화한다.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이 급등하며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급격히 하락해 외환 부족 사태와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2011년 8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70년 만에 처음으로 강등됐을 때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정부는 국제신용평가사 세 곳에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명의의 서한을 발송하는 등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 부총리는 “무엇보다 대외 신인도가 중요하다”며 “대외 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가장 확실한 방안은 탄핵 정국이 빠르게 해결되는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우려했던 국가 신인도 하락 리스크로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 정국 불안에 주요 외신 및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정국 불안 장기화가 국내 소비심리 및 기업들의 투자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여지가 크다.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최정서 기자 adien10@segye.com